미래에셋자산운용이 7조원 규모의 미국 호텔 인수를 둘러싼 중국 안방보험(현 다자보험)과의 소송전에서 승기를 잡았다. 15곳의 미국 고급 호텔을 품겠다는 박현주 회장의 꿈은 무산됐지만 7000억원의 계약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동안 미래에셋이 소송에서 지고, 중국 사업에도 지장을 받게 될 것이라는 등 이 소송과 관련해 각종 시나리오가 쏟아져나오기도 했다.
미래에셋에 따르면 미국 델라웨어주 형평법원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안방보험에 7000억원의 계약금을 반환하고 368만5000달러(약 40억원)의 거래비용과 관련 소송비용 등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미래에셋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미래에셋은 지난해 안방보험과 58억달러 규모의 호텔 매매계약을 맺었다. 당시 환율로 7조1000억원에 달하는 거래였다. 국내 투자은행(IB) 역사상 대체투자 기준으로 가장 큰 규모였다. 미국 뉴욕 JW메리어트 에식스하우스호텔, 로위스 산타모니카 비치호텔, 와이오밍주 잭슨홀의 포시즌스호텔, 샌프란시스코의 웨스틴세인트프랜시스 등을 포함하는 거래여서 관심이 높았다.
올 4월 마무리될 예정이었던 ‘역대급 거래’는 부동산 사기에 발목이 잡혔다. 안방보험이 미래에셋에 넘기기로 한 15곳의 호텔 가운데 6곳의 호텔 소유권이 안방보험도 모르는 사이 SHR그룹이란 유령 기업에 넘어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안방보험이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미래에셋과 거래를 진행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 사실은 미래에셋이 미국 보험회사로부터 ‘소유권은 안방보험에 있다’는 보증서를 받지 못하면서 드러났다. 등기가 전산화돼 있지 않은 미국에선 부동산 매매 과정에 해당 부동산의 소유권을 증명하고 보증하는 보험이 필요해 보험회사가 거래에 개입한다.
계약이 무산 위기에 놓이자 안방보험은 미래에셋을 상대로 계약 이행 소송을 제기했다. 미래에셋은 맞소송으로 대응하며 결국 법정 다툼으로 비화했다. 안방보험 측은 글로벌 홍보대행사를 고용해 한국과 미국에서 언론플레이를 할 정도로 소송에 신경썼다. 소송전은 결국 거래에서 약속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안방보험의 패배로 결론났다.
이날 1심에서 승소한 사실이 전해지자 미래에셋대우 주가는 6.54% 급등했다. 그간 발목을 잡아온 불확실성이 걷히자 시장에서 즉각 반응을 보인 셈이다. 안방보험의 항소 여지가 남아 있지만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심 판결이 미래에셋에 유리한 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2심(최종심)에서 안방보험이 패하면 재판이 길어진 데 따른 소송비용은 물론 계약금 이자도 불어난다.
업계에선 미래에셋의 위기관리 능력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거래가 최종적으로 매듭지어지기 전에 문제점을 발견해 대응에 나섰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딜을 따낸 뒤 실사가 가능한 구조였기 때문에 해외 자산에 대한 꼼꼼한 검증 절차가 아니었으면 소송에 휘말린 호텔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래 무산’ 위기가 뜻밖의 행운을 가져다준 측면도 있다. 작년 9월 계약금을 납입한 미래에셋은 정상적인 절차대로라면 올 4월 15개 호텔의 주인이 됐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세계로 퍼져나간 시점이다. 하늘길이 끊기고 관광객이 자취를 감추면서 호텔 인수가 되레 독이 됐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