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주식시장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유동성 장세’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기업 실적이 위축된 상황에서도 ‘돈의 힘’으로 주가가 올랐다. 기업 실적이 바닥을 찍고 반등하면서 내년에는 ‘실적 장세’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극적인 실적 반등이 예상되는 종목은 이미 상승 사이클을 타고 있다.
외국인 돌아올수록 웃는 반도체·은행코스피지수는 1일 1.66% 오른 2634.25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다. 지난달 27일 기록한 종전 최고치(2633.45)를 2거래일 만에 경신했다. 이날 은 기관투자가가 약 2700억원어치를 순매수하며 상승세를 이끌었다. 시가총액 상위 20개 종목 중 현대모비스와 SK텔레콤을 제외한 모든 종목이 올랐다. 반도체를 포함한 경기민감주가 상승세를 이어갔고, 게임·인터넷 등 성장주도 함께 오른 것이 특징이다.
하나금융투자는 지금 상황을 ‘성장주’와 ‘가치주’의 교집합 국면이라고 봤다. 성장주와 가치주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는 주식에 관심을 둬야 한다는 얘기다. 이익이 증가하면서 주가수익비율(PER)이 낮아지는 종목이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내년 유가증권시장 내 업종별 순이익 비중은 반도체(32%) 은행(11%) 자동차(10%) 화학(5%) 순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외국인 투자자가 선호하는 대표적인 업종으로는 반도체와 은행을 꼽았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MSCI 한국 가치주 지수와 성장주 지수에 모두 포함돼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내년 영업이익이 올해보다 각각 25%, 63% 늘어날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그 상승 동력이 다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삼성전자는 신고가 경신 후 상승 랠리가 짧게는 16개월, 길게는 22개월간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은행 업종은 원화 강세 국면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주로 매입하는 종목이다. 이 팀장은 “올 들어 외국인 투자자가 은행 업종을 4000억원어치 순매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급 측면에서도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차·화·정’ 랠리를 기억하는 기관지난 한 달간 화학과 자동차 업종은 기관투자가가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2011년 차·화·정 랠리 당시 이들 기업 이익이 증가할 때 주가가 급등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부문은 4분기부터 실적 개선이 뚜렷하다. 현대차 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에 비해 53% 늘어날 전망이다. 내년 영업이익은 올해보다 133%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기차 시장이 커지는 것도 현대차에 호재다. 올해 자사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를 활용한 ‘진짜 전기차’ 아이오닉5가 내년 출시된다.
‘실적 모멘텀’으로만 보면 기아차가 현대차보다 더 상승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내년엔 2011년 기록한 영업이익 최고치(3조5251억원)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핵심은 인도시장이다. 지난 9월까지만 해도 월 1만 대 수준이었던 인도 시장 판매량은 10월부터 월 2만 대를 웃돌았다. 만도 등 자동차 부품 기업도 내년에 큰 폭의 실적 개선이 예상된다.
화학산업도 실적 개선에 기대감이 높다. 경기 회복으로 수요는 살아나는데 공급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롯데케미칼의 내년 영업이익이 265%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택배 포장재에 쓰이는 에틸렌 수요는 늘어난 반면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은 떨어지면서 수익성이 좋아졌다. 같은 이유로 대한유화의 내년 영업이익도 올해보다 71% 늘어날 전망이다.
타이어에 들어가는 보강재인 타이어코드 수요가 회복되면서 효성첨단소재도 내년 영업이익이 782% 늘어난 1474억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포스코케미칼은 2차 전지의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한편 글로벌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CS)도 내년 한국 주식시장 전망 리포트에서 “코스피가 강한 실적 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며 내년 코스피지수 목표치를 2600에서 2800으로 상향 조정했다. 반도체를 포함한 기술주(테크), 자동차주, 은행주를 최선호 주식으로 꼽았다.
최예린/고재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