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경영자가 간파하지 못한 기업의 장점을 찾아내 추가 투자 등으로 회사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의 주요 역할이다. PEF의 활약이 늘면서 투자를 받는 회사뿐만 아니라 관련 협력업체 등 산업 생태계 전반이 개선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여성용 구두 쇼핑몰을 운영하는 회사 사뿐이다. 2014년 30대 청년 3명이 설립한 이 회사는 가성비 좋은 구두를 트렌드에 맞게 적시에 내놓으면서 온라인 여성 구두 판매 1위로 급성장했다. 사뿐은 구두를 직접 제조하지 않는다. 여러 협력업체에서 구두를 공급받는다. 대표적인 곳이 경기 양주에 공장을 두고 있는 디자인프리마다. 이 회사는 사뿐 등에서 늘어나는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인근에 새 공장 부지를 샀지만 건축비와 물류 자동화 시설을 추가할 자금이 부족한 처지였다. PEF 지원에 성장 기대 커져
중견 PEF인 유니슨캐피탈이 작년 말 사뿐 지분 60%를 사들이면서 디자인프리마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사뿐은 투자받은 자금을 디자인프리마에 빌려주기로 했다. 새 공장과 물류센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에도 사뿐이 투자한다. 이승수 디자인프리마 대표는 “원래는 3년 이상 자금을 모아야 건축비를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유니슨캐피탈과 사뿐 덕분에 최신식 공장과 물류센터를 지을 여건이 조성됐다”고 만족해했다.
열악한 기존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100여 명의 일터도 크게 개선될 예정이다. 사뿐 창업자인 박연수 이사는 “수도권 구두공장이 대부분 문을 닫고 지방과 해외로 이전하는 추세여서 일감을 찾아다니는 구두 장인들은 곧 지방 소도시로 떠나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며 “디자인프리마가 새로 공장을 지으면 이들이 깨끗한 일터에서 안정적으로 일감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협력사 사정이 좋아지는 것은 사뿐은 물론 유니슨캐피탈에도 반가운 일이다. 사뿐은 생산시설 개선 등을 통해 2024년까지 약 1000억원(300만 켤레)의 매출을 달성할 계획이다. 일본 대만 등 해외 매출도 작년 19억원에서 올해 32억원, 내년 100억원으로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박 이사는 “온라인 쇼핑몰은 직원 이직률이 높은 편인데 유니슨이 경영권을 인수한 뒤에는 회사 성장에 대한 비전이 생기다 보니 올해는 퇴사자가 작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고 했다. 들쭉날쭉 유통체계도 개선
걸그룹 블랙핑크 등을 광고모델로 내세워 인지도를 높인 콘택트렌즈업체 스타비젼도 PEF의 투자를 바탕으로 회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이 회사는 2018년 국내 PEF인 VIG파트너스의 투자를 받았다. 과거 이 회사는 5~6개 콘택트렌즈 업체에서 제품을 받아 유통했다. 그런데 제조사들은 제각기 자기 브랜드로도 유통하고 있었다. 스타비젼 제품이 잘 팔려도 공급이 들쭉날쭉해 320여 곳의 가맹점주가 본사에 항의하는 일이 잦았다.
VIG파트너스는 스타비젼 지분 인수 3개월 만에 국내 콘택트렌즈 제조 2위사인 지오메디컬을 사들였다. 신규 자금을 투입해 공장 설비도 새로 갖췄다. 대량 생산 기반을 마련하고 제품의 질을 높이려는 포석이었다. 스타비젼의 가치가 생산되는 흐름(밸류체인) 자체를 완전히 바꾸는 결정이었다. 마케팅도 한층 과감해졌다. 박상진 스타비젼 대표는 “자체 브랜드 오렌즈의 인지도를 높여야 하는데 마케팅 비용 때문에 고민하던 차에 VIG파트너스가 ‘과감히 결정하라’고 독려해서 블랙핑크를 모델로 기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화장품회사 카버코리아는 글로벌 PEF 베인캐피털이 인수한 뒤 1년 만에 극적으로 회사 가치가 업그레이드됐다. 화장품업계에서 손꼽히는 전문가인 임정아 전 아모레퍼시픽 부사장을 영입하고 앤 해서웨이 등 글로벌 모델을 내세워 고급화를 꾀했다. 베인캐피털은 2016년 이 회사 지분 60.39%를 4300억원에 인수했는데 2017년 이상록 대표 지분(35%)을 포함해 미국 유니레버에 22억7000만유로(약 3조600억원)에 팔았다. 1년 새 기업 가치가 4.3배로 뛰어오르게 된 데는 PEF의 ‘감각’이 작용했다.
기업 가치를 끌어올린 사례를 묻는 질문 자체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PEF 관계자가 많다. 한 PEF 대표는 “회사에 투자해서 새로운 가치를 더 끌어내는 것은 PEF로서 ‘원래 해야 하는 일’인데, 그게 기삿거리가 되겠느냐”고 기자에게 반문하기도 했다. 그만큼 PEF와 기업의 상생 문화가 자리잡았다는 뜻이다.
김채연/차준호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