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신공항이 사실상 백지화된 뒤 동남권 신공항 후보지를 두고 지역 간 갈등이 또 불거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부산 가덕도를 신공항 후보지로 밀어붙이고 있지만, 경남 사천을 중심으로 이른바 '남중권 신공항'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다. 과거 신공항 후보지를 둘러싸고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 간 지역 갈등이 PK 내에서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하영제 국민의힘 의원은 3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현미 국토부 장관에게 "남해안남중권발전협의회에서 지난 15일 정세균 국무총리에게 제2 관문공항 후보지로 남중권도 검토해야 한다고 건의했다"며 "특정 지역을 미리 예단해서 국가 백년대계 사업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사천시 서포면도 어느 지역보다 좋다"며 "예산도 적게 들고 객관적 검토 자료가 많다"고 주장했다.
남해안남중권발전협의회는 경남 진주시·사천시·남해군·하동군, 전남 여수시·순천시·광양시·고흥군·보성군 등 9개 지역 모임으로, 사천시 서포면 일대를 신공항 후보지를 밀고 있다. 협의회는 "남중권은 영·호남 등 대전 이남권역 반경 2시간 이내 지역의 2330만명을 수용할 수 있어 관문공항의 최적지"라며 "사천시 서포면은 항공기 이·착륙 시 안전성과 공항 건설 시 천문학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중권 중심으로 신공항 유치를 강력히 희망하면서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앞두고 제2의 지역 갈등으로 비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동남권 신공항 유치로 TK와 PK간 갈등이 고조되자, 정부는 2016년 이해관계가 없는 프랑스 용역업체인 ADPi(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를 참여 시켜 검증을 맡겼다. ADPi는 김해신공항을 1위로 평가했고, 갈등은 봉합됐다.
하지만 2018년 6월 지방선거 결과 PK 지역에서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으로 대거 교체되면서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문재인 대통령도 선거 과정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언급하기도 했다. 결국 국무총리실은 김해신공항 재검증위원회를 꾸렸고, 검증위는 최근 김해신공항이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냈다.
민주당은 검증위 결과가 나오고 9일 만에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발의했다. 이를 두고 여당이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사업비 10조원이 넘는 대형 사업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과거 평가에서 가덕도는 또 다른 후보지인 경남 밀양보다도 못한 '꼴찌'였던 점에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당장 TK에서는 김해신공항 백지화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 17일 공동입장문에서 "510만 대구·경북민은 1300만 영남권 시·도민의 염원이자 미래가 달린 김해신공항 건설 사업을 당초 계획대로 추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앞으로 진행되는 모든 절차에 대해 영남권 5개 시,도의 합의가 반드시 전제돼야 함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TK의 반대는 물론 남중권에서 동남권 신공항 후보지를 원점부터 검토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면서 정부·여당도 난처한 상황에 부닥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이날 "국토부는 18년 동안 일관되게 김해신공항 진행해왔다"며 "검증위 검토 결과를 수용하면서 후속 조치를 준비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