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지난 25일 노동이사제 도입을 공식화했다. 이런저런 설명을 붙였지만 ‘문재인 대통령 공약사항’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경사노위 발표를 보면서 2017년 5월 12일 문 대통령의 인천공항공사 방문이 오버랩됐다. 문 대통령이 당선 후 제일 먼저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한 것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공약 때문이었다. ‘비정규직 제로’가 결코 정책이 될 수는 없다. 인천공항공사에 자회사를 만들어 그곳에 비정규직을 배속시키는 방식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풀었다. 일종의 변칙이다. 문재인 정부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사회적 일자리 등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대폭 늘려왔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비정규직은 척결해야 할 ‘악(惡)’이 아니다. 고용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다양한 비정규직이 만들어지고 있다. 본질은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이지 폐지가 아니다.
집권 4년차에 ‘공약이기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한다’는 주장은 군색하기 짝이 없다. 노조의 집요한 이익추구 행위가 막차를 탄 것이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해 의결권을 갖고 경영에 참여하는 제도다. 취지는 근로자의 참여로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부실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 논리대로라면 ‘아직 노동이사제가 도입되지 않은 현재’ 모든 공공기관은 부실하고 투명하지 않아야 한다. 무릇 제도를 도입하려면 그 효익(效益)을 논증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이사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도입해야 한다’는 중언부언만 있을 뿐이다.
공기업에는 이미 강력한 노조가 있다. 매년 노사 간에 임단협을 진행하고 있다. 제도적으로 노사 간에는 균형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노동이사제는 이사회의 ‘옥상옥’이거나 아니면 ‘사족’ 중 하나다. 노동이사제를 반대로 해석하면 노조집행부에는 사측이 추천하는 인사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경사노위는 25일 노동이사제는 받아들이되 직무급제는 추후 ‘연구과제’로 남기겠다고 했다. 합의문에 의하면 ‘직무급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 노력하되, 획일적·일방적 방식이 아니라 기관별 특성을 반영해 개별 공공기관 노사 합의를 통해 자율적·단계적으로 추진한다’로 돼 있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면 노동이사제도 획일적 일방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노사합의를 통해 자율적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노동개혁 차원에서 노동이사제가 논의될 때 ‘임금체계 개편’도 정책 패키지로 동시 논의 대상이었다. 결과적으로 단것만 삼키고 쓴것은 뱉은 꼴이다. 박근혜 대통령 때도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 정책묶음에서 유리한 것만 취사선택했다. 정년은 연장됐지만 임금피크제는 사실상 폐기됐다. 노동이사제가 도입되고 나면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은 없던 것으로 치부될 공산이 크다.
일각에서는 독일 사례를 들어 노동이사제의 정당성을 주창한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독일의 기업 지배구조는 집행기구 역할을 하는 경영이사회와 견제 역할을 하는 감독이사회로 나뉘어 있다. 경영이사회에 노조 추천인이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강성 노조가 장악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노동이사는 공공의 이익보다 노조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노조의 이익이 공공의 이익과 등가물일 수는 없다. 기존 노조에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비효율과 방만경영은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동등무기원칙(equal footing)’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노조의 파업권은 최고로 인정되지만 사측의 ‘대체근로 투입’은 극히 제한돼 있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인 것이다. 노조법 개정, 국제노동기구 협약비준도 모자라 노동이사제를 더하면 뒤집어진 운동장이 될 것이다. 노동이사제는 민간으로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노조천국을 만들고 있다. 젊은이들이 취직이 될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