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도공의 마음과 시간으로 빚은 찻사발 ‘정호다완’의 미학

입력 2020-12-01 14:41
수정 2020-12-01 14:43
김종훈(48)은 20년 이상 '정호(井戶)다완'을 연구·제작하며 한국 전통 도예의 맥을 이어온 작가다. 그는 흔히 말하는 막사발과 정호다완은 생김새가 비슷해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잘못이라고 설명한다. 정호다완은 14~16세기에 제작된 데 비해 막사발은 임진왜란 이후인 17~19세기에 제작돼 서민들이 사용했던 생활 도자기를 총칭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이도(井戶)다완'으로 불리는 정호다완은 국내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다도(茶道)가 성행한 데 비해 도자기 제작 기술이 떨어졌던 일본이 임진왜란을 전후해 조선 찻사발을 싹쓸이해 간 탓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찻사발을 지방 영주인 다이묘(大命)들에게 신임의 증표로 선물하는 '찻잔정치'를 폈고, 다이묘와 무사들은 권력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도다완을 헌납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수많은 조선 도공을 끌고 간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국보, 보물로 지정된 이도다완이 20여 점이나 되고, 민간에서 소장한 이도다완도 300여 점에 이른다. 도요토미의 차(茶) 선생이이자 '차의 성인'으로 불리는 승려 센노 리큐(千利休)는 조선 찻사발을 보고 "찻잔 안이 마치 작은 옹달샘을 보는 듯하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일본어로 우물이라는 뜻의 '이도'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다.

김 작가는 15년에 걸쳐 수십 차례 일본을 방문해 현존 정호다완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내면에 녹여 재현했다. 일부 작품에선 옛 정호다완과 같은 미세 균열, 유약의 뭉침 등이 재현되기도 했지만 그의 목표는 단지 재현하는 데 있지 않다. 과거 정호다완을 만들었던 사기장의 마음과 생각을 받아들여 내면에서 곱씹고 정제해 드러내고자 했다.

다완에 적합한 사질점토를 산에서 채취해 7~8년 숙성시키고, 물에 휘저어 불순물을 걸러내는 수비와 기포를 제거하기 위해 주무르고 누르는 꼬막을 거쳐 물레에 올리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그는 물레질을 할 때 그릇에 작가의 손이 기억되고 생각이 부여된다고 믿는다고 했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춘추 IV. 황중통리(黃中通理): 김종훈 도자' 전은 그가 최근 3년간 제작한 찻사발 78점과 백자 대호 6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그릇의 크기와 형태에 따라 대정호, 소정호, 청정호의 세 유형으로 나눠 보여준다. 조선시대 다완 3점과 달항아리 1점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그는 "찻사발은 차를 따라 마시면서 비로소 작품으로 완성된다"고 강조한다. 찻사발, 달항아리 등 17~18세기 도자기와 자신이 새로 만든 도자기를 나란히 배치한 것도 이런 생각에서다. 장작가마에서 막 꺼낸 찻사발과 3개월, 6개월 사용한 것, 조선시대 찻사발을 나란히 놓고 보면 빙열(미세균열)에 스며든 차의 흔적 차이가 뚜렷하다. 도공의 손길과 정성 외에 차를 마시는 사람의 손길과 축적된 시간이 작품을 함께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번 전시는 '옛것을 배우고 익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학고창신(學古創新)'의 실현을 위해 학고재가 열어온 '춘추(春秋)'전의 네 번째 기획이다. 전시 제목의 '황중통리'는 주역 곤괘에서 땅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말로, 내면의 지성을 갈고 닦아 이치에 통달하는 마음자세를 이른다. 21세기에 만든 정호다완에서 내면의 응축된 황색, 즉 땅의 색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전시는 12월 27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