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26일 예년보다 한 달 앞당겨 정기인사를 단행했다. 85개 계열사 중 13곳의 조직장을 교체한 이번 인사의 핵심은 ‘신동빈 회장 체제 완성’이었다. 작년 인사까지 포함하면 불과 2년 만에 롯데 산하 60개 조직장 중 절반 이상인 35명을 물갈이했다. ‘롯데의 2인자’로 불리다 지난 8월 인사에서 용퇴한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관리 아래 있던 지주회사 내 6개 실 수장을 이번 인사로 모두 교체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역할 커진 송용덕 부회장이날 유통·화학·식품·호텔&서비스 등 4개 비즈니스유닛(BU)에 속한 85개 계열사 중 35개사가 일제히 임시 이사회를 열었다. 올해 인사는 코로나19 확산 등 외부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신속히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한 달가량 앞당겨졌다.
당초 ‘독한 인사’가 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신 회장은 그룹의 중추를 대부분 유지하는 등 안정을 우선시했다. 강희태 유통BU장(부회장), 김교현 화학BU장(사장), 이봉철 호텔&서비스BU장(사장) 등 4개 BU 중 3곳의 수장을 유임시켰다. 신임 식품BU장(사장)엔 이영구 롯데칠성음료 대표를 승진과 함께 선임했다.
황 부회장 용퇴로 롯데지주의 유일한 부회장으로 남게 된 송용덕 대표의 역할이 두드러졌다는 점도 이번 인사의 특징이다. 인사 등 안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송 부회장은 인사 대상자조차 이사회 당일에야 해당 사실을 알았을 정도로 내부 군기를 확실히 잡았다. 재계 관계자는 “신 회장이 롯데의 미래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송 부회장은 그룹 전체의 기강을 세우는 등 내조에 집중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그룹 ‘중추’는 대부분 유임BU별로도 큰 폭의 경질성 인사는 드물었다. 롯데쇼핑만 해도 2년을 채운 마트부문 대표만 교체됐다. 황범석 백화점 대표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신임 마트사업부장(전무) 자리엔 강성현 롯데네슬레코리아 대표가 이동했다.
화학BU에선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부문을 2년간 이끈 임병연 대표가 롯데미래전략연구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초소재 대표는 황진구 전무가 승진해 맡는다. 대표가 바뀐 화학 계열사는 롯데케미칼USA, 롯데베르살리스, 롯데타이탄 등 해외 계열사 3곳 정도다.
식품BU 역시 이영구 사장의 승진으로 공석이 된 롯데칠성음료와 롯데푸드의 대표가 교체됐을 뿐이다. 호텔&서비스BU의 핵심인 김현식 롯데호텔 대표도 이번 인사 대상에서 빠졌다. 다만 롯데지주는 커뮤니케이션실장에 고수찬 롯데건설 부사장을 내정하고, 준법경영실장에 검사 출신 박은재 변호사를 영입하는 등 큰 폭의 변화를 겪었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2년 사이 6개 실 수장이 모두 교체됐다”고 말했다. 임원 20%가량 짐 싸신 회장이 ‘뉴 롯데’를 지향하고 있는 만큼 50대 초반의 ‘젊은 CEO’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눈에 띈다. 박윤기 롯데칠성음료 대표(50), 강성현 롯데마트 사업부장(50), 이진성 롯데푸드 대표(51), 황진구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대표(52), 차우철 롯데지알에스 대표(52), 노준형 롯데정보통신 대표(52) 등이 이번 인사의 수혜를 봤다.
롯데그룹은 앞으로도 젊은 CEO 배출을 위해 승진 제도를 개선한다고 밝혔다. 임원 직급 단계를 6단계에서 5단계로 축소하기로 했다. 부사장 직급의 승진 연한을 폐지하는 등 직급별 승진 연한도 없애거나 축소한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신임 임원이 사장으로 승진하려면 지금까지는 최소 13년이 걸렸다”며 “이번 직제 개편을 통해 초고속 사장 승진도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회장은 승진 임원을 작년 대비 80%로 제한하는 등 실적 악화에 따른 논공행상도 분명히 했다. 퇴임 임원이 계열사별로 20%가량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제과 파키스탄 콜손 법인의 카얌 라즈풋 법인장도 신규 임원으로 선임됐다. 지주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글로벌 임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