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의 경고 잊었나…또 다시 官피아·政피아 '전성시대'

입력 2020-11-26 17:23
수정 2020-11-27 12:14
다음달 8일 임기를 마치는 신용길 생명보험협회장은 교보생명과 KB생명 사장을 지낸 금융인이다. 이수창 전임 협회장도 삼성생명 사장 출신이었다. 김규복 이우철 남궁훈 등 재무부 관료들이 독차지했던 생보협회장 자리를 민간에서 맡게 된 것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여파였다. 관료 출신의 산하기관장 ‘싹쓸이 인사’가 적폐로 몰리면서 ‘관피아(관료+마피아)’들은 숨을 죽였다. ‘정피아(정치인+마피아)’들도 눈치를 봤다.

민간 출신 생보협회장 시대가 6년 만에 막을 내린다. 26일 생보협회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3선 의원으로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던 정희수 보험연수원장을 단독 후보로 내세웠다. 생보협회장에 정피아가 내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봉 3억원 정도를 받던 정 원장은 임기가 1년 남은 보험연수원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생보협회장(임기 3년) 연봉은 4억원 안팎이다.



생보협회장뿐만 아니다. 관료와 정치인들은 올해 자리가 바뀌는 금융권 유관기관 수장 자리를 석권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서 공직생활을 마치고 한국증권금융 사장에 올랐던 정지원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손해보험협회장이 됐다. 관료 출신인 김광수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금융권 최대 유관단체인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이 된다. 유광렬 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퇴임 반년 만에 서울보증보험 사장으로 다음주부터 출근한다. 정 전 이사장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손병두 전 금융위 부위원장이 거론된다.

세월호 참사는 막강한 규제 권한을 쥐고 있는 공무원이 그 선배들 또는 정치인 출신 유관단체장과 결탁했을 때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교훈을 남겼다. 관료와 정치인 출신이라는 딱지 때문에 유능한 인재들을 내몰아야 하느냐는 항변이 설득력을 얻지 못했던 이유다.

다시 관피아와 정피아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민간 출신과 ‘마피아·정피아’ 가운데 누가 일을 더 잘하는지, 왜 일이 잘 되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단 한 명의 비교군조차 남겨두지 않았다.

세월호의 경고는 극복됐을까. 보험업계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규제가 범람하는데도 꿈쩍않던 공무원들이 선배나 실세들의 이야기는 듣는 척이라도 해준다”며 “세월호 때문에 힘 있는 사람을 모셔오지 못해 사실 좀 답답했다”고 털어놨다. 규제 완화가 논리와 합리로 이뤄지지 않고, ‘인정(人情)’으로 움직이는 ‘마피아·정피아들의 공생구조’를 척결하지 못하면 참사는 언제고 되풀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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