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요즘 잠이 오질 않는다. 339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첨된 아파트가 하루아침에 날아가서다. 복잡한 청약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당첨자발표부터 부적격 통지까지,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데는 닷새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무주택자인 A씨 부부가 내집마련을 결심한 건 전셋값이 심상치 않아서다. 매번 ‘내년엔 사야겠다’고 미뤄왔지만 올해는 달랐다.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시행 이후 전세가격이 무섭게 오르면서 이러다 다음 전셋집은 구경조차 못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부부를 덮쳤다.
그렇다고 끌어모을 영혼이 마땅한 건 아니었다. 자금조달로는 만만한 게 청약이라지만 A씨 부부에겐 이마저도 장벽이 높았다. 40점대 가점으로 서울 아파트 일반공급은 언감생심, 결혼을 일찍 한 탓에 신혼부부 특별공급도 노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더 낳아 다자녀 특공을 노리자니 둘 키우는 살림도 빠듯했다.
천우신조는 생애최초 특공이었다. ‘7·10 대책’을 통해 민간분양에 도입된 생애최초 특공이 A씨 부부에겐 동앗줄이 됐다. 주택소유 이력이 없고 소득 기준만 맞는다면 가점 없이 추첨으로 경쟁하기 때문이다. A씨 부부 입장에선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을 수 있게 된 셈이었다.
생애최초 특공이 도입되는 단지가 나오려면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이 필요했다. 이를 기다리는 동안 A씨 부부는 생이별을 했다. 내년 입학을 앞둔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배정 시기와 전세 만기가 겹쳤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직접 입주하겠다는 통에 계약을 연장할 수 없었고 주변 전셋값은 이미 수억원씩 올라 당장 전셋집을 새로 구하기 어려웠다. 아내가 근처 처가로 아이들과 함께 들어가야 주변 학교로 취학이 가능했다. A씨는 근처 오피스텔을 구했다. 아내와 주민등록상 가구도 분리했다. 그땐 몰랐다. 이 결정이 일생일대의 패착이 될 줄은.
A씨가 ‘반 기러기’ 생활을 하는 동안 경기 하남에서 ‘감일푸르지오마크베르’가 분양했다. 전체 496가구 가운데 생애최초 특공 물량은 49가구. 이 마저도 전용면적 84㎡ 두 개 주택형으로 나뉘었다. A씨 부부는 서향과 북향인 전용 84㎡A형 대신 남향인 전용 84㎡B형에 청약하기로 했다. 물량도 B형이 30가구로 A형(19가구)보다 많았다.
그러나 경쟁도 치열했다. A씨와 같은 처지인 1만170명이 몰려 경쟁률만 339 대 1을 기록했다. 일반공급 1순위 청약에선 11만명이 청약통장을 던졌다. A씨는 ‘특공에서 탈락하는 1만140명 중 한 명이겠지’라고 마음을 비우면서도 당첨자발표까지 열흘 동안 은근히 마음을 졸였다. 발표일엔 잠도 거르고 자정이 되자마자 청약홈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리고 만세를 불렀다. ‘앉아서 5억을 벌었구나!’ 새벽 4시가 넘어 뒤늦은 당첨 통보문자를 받을 때까지 A씨는 아내와 통화를 하느라 침대에 눕지 못했다.
당첨자 서류접수일인 닷새 뒤까지 A씨 부부는 날마다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입주까지 한참이나 남았지만 어떤 가구와 가전을 들이고 인테리어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의논했다. 감일지구의 주변 환경은 어떤지, 회사로 출퇴근하려면 어떤 교통편을 이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시간까지 재가며 3년 뒤의 미래를 그렸다.
A씨 부부의 꿈이 산산이 부서진 건 서류를 내고 집으로 돌아온 뒤였다. 분양사무소에서 부적격 당첨자라는 통보를 해온 것이다. 생애최초 특공은 가구 기준으로 주택소유 이력이 없어야 하는데 아내가 친정 부모님과 합가하면서 주택을 소유하게 됐다는 이유였다. A씨의 처가는 8년짜리 분양전환 임대주택에 살다 아내가 합가할 무렵 등기를 마쳤다.
A씨는 아내와 분리된 가구이기 때문에 자신이 부적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따졌다. 그러나 분양사무소 직원은 야속할 정도로 조목조목 반박했다. 배우자가 분리가구일 땐 배우자와 같은 가구의 구성원들도 주택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생애최초 특공의 규정이란 것이다. A씨는 그런 법이 어디에 있느냐며 따졌지만 입주자모집공고문의 첫 페이지에 굵은 글씨로 써있다는 답만 돌아왔다. 2018년 12월 개정된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무주택가구 구성원’의 기준에 대해 배우자의 직계존·비속이 함께 주민등록표에 등재돼 있을 경우 이들 또한 무주택 상태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A씨는 국토교통부에 민원을 넣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구제받을 수 없었다. 청약제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일이기 때문이다. 42년 동안 146차례나 개정됐을 정도로 복잡한 규정이지만 난수표를 해독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는 것 말곤 방법이 없었다. 신문기사로 접하며 혀를 차던 황당 부적격 사례들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생애최초 내집마련이 생애 최대의 악몽이 된 A씨는 이렇게 푸념했다. ‘남의 얘기가 아니구나.’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