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증시가 일제히 뛰고 있는 것은 경제가 머지않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에서 벗어나 정상화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코로나19 백신이 조만간 대량 보급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인수 절차가 공식화되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사라진 데다 ‘비둘기파(통화완화론자)’인 재닛 옐런 전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재무장관에 낙점됐다는 소식도 호재로 작용했다. 시장은 바이든이 규제보다 경제 재건에 방점을 찍은 신호로 받아들였다.
4년도 안 돼 1만포인트 급등1896년 12개 종목으로 출범한 다우지수가 10,000선을 뚫은 건 1999년 3월이었다. 1만포인트 높이는 데 103년 걸렸다. 닷컴버블이 붕괴한 뒤 재상승한 다우지수는 18년 만인 2017년 1월 20,000 고지를 밟았다. 이후 3년10개월여 만인 24일(현지시간) 30,000을 돌파하며 새 역사를 썼다. 주가 상승 속도가 가팔라진 것이다. 미국개인투자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개인투자자의 낙관론은 약 3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코로나 충격’을 받았던 올해의 주가 상승세는 더욱 극적이다. 지난 3월 23일의 저점(18,591.93)과 비교하면 8개월 만에 61.6% 급등했다. 특히 다우지수의 최고 기록 경신은 본격적인 경제 정상화 신호로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정보기술(IT) 기업 외에 보잉 월마트 나이키 JP모간 셰브론과 같은 경기 순환주를 두루 포함하고 있어서다. 기술주 위주인 나스닥지수는 비대면 경제 바람을 타고 8월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증권사인 TD아메리트레이드의 키네한 수석전략가는 “코로나19 사태 후 IT 종목이 증시를 주도했으나 최근 들어 에너지·항공 등 기존 소외주로 바뀌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신·정치안정·옐런’이 견인시장에선 최근 글로벌 증시 상승을 견인하는 건 세 가지 요인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우선 코로나19 백신 보급에 대한 기대다.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와 모더나에 이어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도 자사 백신의 예방 효과가 최고 90%를 넘는다고 발표했다. 앨릭스 에이자 미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몇 주 후 백신을 승인한 뒤 최대한 신속하게 배포하기 위해 자체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치의 불확실성도 빠르게 걷히고 있다. 대선 결과에 불복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모진에 바이든 인수위원회에 협조하라고 지시해서다. 트럼프가 퇴임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바이든이 트럼프와 달리 국제 무역질서 회복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을 시장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옐런 전 의장의 재등장이다. 바이든 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으로 낙점된 옐런은 재정 확대와 저금리 기조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현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연말에 종료하겠다고 예고한 Fed의 긴급대출 프로그램도 내년 초 복구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월가 “1년 내 25% 상승도 가능”월가에선 뉴욕증시가 내년에도 강세장을 띨 것이란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로이터통신이 애널리스트 40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한 결과 내년 말 지수가 지금보다 9~10%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사미르 사만다 웰스파고 수석전략가는 “내년엔 코로나19 백신이 대량 배포될 것이란 기대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모건스탠리는 현재 3600선인 S&P500지수가 내년 초 4000을 찍고, 내년 말 4600까지 오를 것으로 봤다. JP모간도 1년 후 주가가 지금보다 25% 이상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억만장자 투자자인 레온 쿠퍼맨은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Fed가 양적완화를 통해 돈을 공급한 것이 주가 상승을 견인해왔다”며 “파티가 끝나면 누군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투자회사 인베스코의 브라이언 레빗 시장전략가는 고객 투자노트에서 “다우지수는 버블 붕괴 직전이던 1999년 10,000선을 돌파한 뒤 급락했다 2009년 다시 10,000 고지를 밟았는데 주당순이익(EPS) 대비 평균 주가가 각각 30배와 12배였다”며 “지금은 그 중간 수준인 만큼 과도하게 낙관 또는 비관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