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 빈 '문재인 케어'…척추MRI 건보적용 1년 연기

입력 2020-11-25 17:21
수정 2020-11-26 01:35
당초 이달부터 시행될 예정이던 척추 자기공명영상(MRI)의 건강보험 적용이 1년 안팎 연기된다.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시행 후 비용이 예상보다 급증하면서 건보 재정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된 데 따른 것이다.


25일 의료 및 사회단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최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참가 단체 및 기관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고 척추 MRI 급여화(건보 적용)를 내년 하반기로 미루는 방안을 제시했다. 내년 상반기 구체적인 척추 MRI 급여화 방안을 마련해 하반기 건정심에서 의결해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복지부가 내년 하반기라고 뭉뚱그려 밝혀 시행 시기가 내년 7월이 될지 12월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2022년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인 만큼 척추 MRI 급여화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복지부는 올해 건보 보장성 확대 일정을 발표하며 척추 MRI 급여화를 이달부터 시행하겠다고 했다. 이 계획을 1년 가까이 미루기로 한 것이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문재인 케어 시행 과정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복지부는 문재인 케어 시행 후 비용 부담이 예상보다 커지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각종 항목의 급여화 내용을 수정하고 있다. 예컨대 2018년 10월 도입한 뇌 MRI는 관련 수요가 급증해 실제 비용이 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 예상치의 1.5배로 치솟았다. 이에 따라 지난 3월부터 비용의 30%였던 본인 부담률이 80%로 대폭 상향됐다.

양압기 대여도 건보 적용 이후 연 2만 건이던 수요가 수십만 건으로 폭증해 재정 압박이 심해지면서 20%였던 본인 부담률이 이달부터 50%로 확대됐다.

이 같은 일련의 정책 수정으로 문재인 대통령 임기 안에 보장률(개인 의료비 지출에서 건보가 부담하는 비중)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문재인 케어의 목표 달성은 불가능해졌다.

건보 재정도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2조8000억원의 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1조원이 넘는 적자가 발생할 전망이다.

가입자의 부담 역시 빠르게 늘고 있다.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을 합친 건보료율은 2017년 6.49%였지만 내년 7.65%까지 오른다. 세전 월 300만원을 받는 근로생활자 기준으로 2017년 월 19만4700원이던 건보료는 내년 22만9500원으로 월 3만4800원 늘어난다. 건보료율이 이처럼 오르면서 8%로 정해져 있는 법정 상한선도 이르면 내년 국회에서 상향 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부가 각종 부과 기준을 조정하면서 지역가입자들의 보험료 부담도 대폭 늘었다. 소득·재산 변동을 반영한 지역가입자 보험료는 이달 들어 전월 대비 가구당 평균 8245원(9.0%) 올라 사상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2017년 이전까지 연 4~5%를 나타냈던 지역가입자 보험료 증가율은 문재인 케어 시행 이후 연 9% 안팎으로 치솟았다.

선심성 건보 적용이 확대됐지만 정작 도움이 절실한 중증 환자들은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면역항암 효과가 확인돼 세계 52개국에서 보험 적용을 받는 키트루다는 관련 심의위원회에서 3년 넘게 건보 적용이 미뤄지고 있다. 건보 재정 부담이 이유다.

복지부는 환자들이 이미 처방받고 있는 각종 약품도 심사를 통해 건보 적용 대상에서 대거 퇴출시킬 계획이다. 역시 재정 문제가 주요 이유 중 하나다. 복지부가 이미 건보가 적용되던 약품을 퇴출시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성인 연세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건보 적용 항목 확대는 어느 정부든 추진해왔지만 이번 정부에선 문재인 케어라는 이름으로 유독 빠르고 강하게 시행하다 각종 부작용을 불러오고 있다”며 “문재인 케어 정책 내용이 나오기 시작한 2017년부터 전문가들이 경고했던 문제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경목/이지현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