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법은 외국법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를테면 고구려는 중국의 율령(律令)으로부터 영향받아 고대 법체계를 확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 시대에도 당·송의 율령을 받아들여 통치제도를 설계했다고 한다. 해방 직후에는 혹독한 식민통치하에서 어쩔 수 없이 익숙해진 일본법으로 인해 독일법·프랑스법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의 대륙법을 간접적으로 수용한 바 있다. 오늘날에는 지리적인 국경이 큰 의미가 없다 보니 우리나라와 법체계가 다른 영·미의 법제를 도입해 사용하기도 한다. 상법도 예외는 아니다. 1962년 제정된 상법은 영·미 회사법을 모델로 하는 이사회제도를 수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감사위원회제도는 1999년 개정 상법에서 미국 것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사 선임은 주주총회에 전속적으로 부여돼 있다. 사실 주주가 후보를 추천해 이사로 선임할 수 있다는 것은 주주가 이 권한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주의 법적 지위는 투자로 인한 지분을 소유함으로써 부여되므로 주주권은 소유권의 변형물이라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다. 이에 대법원은 법률은 물론 다른 방법으로라도 주주의 의결권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것은 주식회사 제도의 본질적 기능을 해하므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감사위원이 이사 지위를 함께 가지고 있으므로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지 않는 현행 상법의 입장은 당연한 것이다.
최근 정부는 감사위원 선임과 관련해 최대주주의 경우 특수관계인 등을 합산해 3%를 초과하는 주식과 일반주주의 경우 3%를 초과하는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사 선임에 대해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이 주주권의 본질에 반하는 까닭에 그런 의결권 제한을 정한 외국의 입법례를 찾기 어렵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스라엘법,이탈리아법에는 주주의 의결권을 더 강력히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과연 이런 주장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회사법 제239조는 공개회사라면 2인 이상의 사외이사를 둬야 하고, 사외이사를 주주총회에서 선임하는 과정에서 소수주주로부터 일정한 수의 찬성표를 얻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주주총회에서의 결의요건에 추가해 소수주주의 동의를 요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주주총회에서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규정이라고 볼 수 없다. 이탈리아 금융통합법 제147-ter조에 따르면 이사회 구성원 중 최소 1명을 소수주주가 추천한 후보 중에서 선임해야 한다. 물론 이 같은 선임은 정당하게 소집된 주주총회에서 이뤄지며, 이 경우에도 대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법을 제정하거나 기존의 법을 개정·개선하는 경우 외국의 입법례나 경험을 조사해 참조하는 것이 보통이다. 영국은 아예 이를 강제하는 법률을 두고 있다. 1965년 제정한 법률위원회법은 입법 준비 작업을 할 때 정부 산하 법률위원회에 법을 개정하는 이유와 취지를 담은 보고서를 작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 위원회가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국가의 법제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것을 의무로 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 국회의 의안정보시스템에 공개된 1쪽 남짓한 자료에는 정부가 상법 개정안을 제안하는 이유와 주요 내용에 관한 소개만 담겨 있다. 오히려 정부안을 지지하는 측에서 한국의 산업구조와 글로벌 경쟁력에 걸맞지 않은 이스라엘과 이탈리아의 법률을 들고나올 뿐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할 수 있는 선진 입법례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상법 개정안을 작성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