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23일 주요 기업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남북한 경제협력에 나서달라고 한 것과 관련해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현실성이 떨어지는 발언이라고 일제히 비판했다. 차기 미 행정부의 미·북 대화 틀도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연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발언은 시기상조라는 비판도 나왔다.
에반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23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대북제재의 유연성에 대한 이 장관의 발언과 관련해 “이 장관이 묘사한 미래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지도자의 모든 발언은 북한이 자국 안보를 위해 핵무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주장만을 재확인하고 있다”며 “비핵화 협상에 대한 진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핵화 협상의 진전 가능성이 없는 이유로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관을 꼽았다. 리비어 전 수석차관보는 바이든 당선인이 북한과 원칙에 입각한 대화에 대해서는 열려있지만 무력 도발과 핵·미사일 실험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바이든 행정부의 태도는 북한의 환심을 사기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이 장관은 23일 삼성·SK·LG·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비핵화 협상의 진전이 생겨 대북 제재의 유연성이 만들어지는 기회가 생기면 남북 경협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시작될 가능성도 있다”며 대북 제재가 유연해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어 남북 경협 사업으로 북한 지역의 개별 관광과 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 사업 재개 등을 꼽았다.
이에 대해 켄 고스 해군분석센터(CNA) 국장은 “비핵화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점은 언급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미·북 양측의 의지는 고려하지 않은 “가정에만 기반한 발언”이라는 것이다. 고스 국장은 “바이든 행정부는 비핵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분명히 이야기했다”며 “북한도 한·미가 어느 정도 양보하지 않는 한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이야기 했다”고 지적했다.
이 장관이 문재인 정부의 임기 만료 전에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 수 킴 랜드연구소 연구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2022년에 끝나고 곧 차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이 현재 북한과의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김정은 정권에 대한 일치된 정책이나 전략보다는 북한에 대해 ‘무엇이든 해내야 한다’는 근시안적 고려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