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박혜상(33·사진)이 ‘차세대 디바’로서의 개성과 재능을 명확히 드러냈다. 지난 2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독주회를 통해서다. 고음부를 열창할 때 풍부한 성량을 냈다. 음색도 두터웠다. 오페라 여성 주인공의 아리아를 가냘프게 부르지 않았다. 탄탄한 실력이 뒷받침되자 무대의 연기까지 여유로웠다.
가장 빛났던 무대는 스페인 작곡가 사비에르 몽살바헤가 쓴 연가곡 ‘다섯 개의 흑인노래’였다.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혜상은 “새 음반에 넣으려다 뺀 곡이다. 공연에선 이 작품이 돋보일 것”이라고 했다. 예언은 현실이 됐다. 곡에 담긴 라틴 음악 특유의 빠른 박자와 급변하는 선율을 매끄럽게 소화했다. 류태형 음악평론가는 이 무대를 두고 “박혜상의 풍부한 표현력이 돋보였다”며 “청중들은 다섯 곡을 들으며 호기심을 놓지 않았다”고 평했다.
공연 구성도 눈길을 끌었다. 앞서 부른 곡이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 헨델의 오페라 ‘줄리오 체사레’ 중 ‘Se pieta(저를 가엾게 여기지 않으신다면)’였다. 바로크 시대와 현대 음악을 나란히 배치해 관객을 매료시켰다.
팬들 기대에도 부응했다. 클레멘스 트라우트만 도이치그라모폰(DG) 사장이 반했던 배역인, 조아치노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의 여주인공 로지나로 열연했다. 1부 마지막 곡으로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중 ‘Una voce poco fa(방금 그 노랫소리)’를 들려줬다. 30초 동안 내지르는 고음 부분에서도 떨림음은 없었다. 그는 무대에서 전후좌우로 돌며 로지나의 당찬 모습을 열연했다.
공연 마무리는 그가 “나의 자유로운 정신에 어울리는 곡”이라 했던 한국 가곡들. 최진의 ‘시간에 기대어’, 김주원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에 이어 앙코르로 이원주의 ‘이화우’와 나태주의 ‘시편 23편’을 연달아 들려줬다. 바로크와 고전 오페라부터 스페인 연가곡, 한국 가곡까지 망라한 것이다. “과거를 이어받아 현대로 뻗어가는 성악가가 되고 싶다”는 그의 꿈이 허언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인 박혜상은 세계 최대 클래식 음반사인 DG와 계약을 맺고 122년 DG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가곡 앨범을 내 주목받았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