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일본에선 '북강남·남서초'가 뜬다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입력 2020-11-22 09:50
수정 2020-11-22 09:58

도쿄에서 투자회사를 경영하는 시라이시 도모야 사장은 올 여름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의 별장을 구입했다. 한달의 80%는 가루이자와, 나머지 20%는 도쿄에서 지내며 업무를 본다. 시라이시 사장은 22일 마이니치신문에 "이미 형성돼 있는 고객관계를 바탕으로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온라인으로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업무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며 "좀 더 일찍 왔더라면 싶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지금 일본에서는 대표적인 여름 피서지이자 부유층의 고급 별장이 밀집한 가루이자와가 뜨고 있다. 재택근무가 정착되면서 경치 좋고 공기 맑은 자연에서 원격으로 일하려는 도시인들이 몰려들고 있어서다. 투자회사 대표, 기업 경영인 등 고소득자들을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면서 가루이자와에는 '기타(北)아자부'라는 새로운 별명이 붙었다. 도쿄 미나토구의 일본 최고 부촌 니시(西)아자부의 북쪽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에서 가까운 강원도에 '북강남', '남서초' 같은 신흥 부촌이 생겨나는 셈이다.

도쿄에서 불과 130km 떨어진 가루이자와는 시라이시 사장과 같이 두 곳에 거점을 두는 생활이 가능하다는게 장점이다. 가루이자와에서도 인기가 높은 지역은 부동산값이 치솟고 있다. 새로 이주해 오는 주민들이 늘어나면서 인터넷 설치 공사를 하려면 2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도쿄에서 가루이자와로 거처를 옮긴 또다른 주민은 "출퇴근에 1시간이 걸린다면 평생동안 몇 년을 만원전차에서 보내는 셈"이라며 "직주근접(직장과 주거공간이 가까움)인 이곳은 일과 생활을 양립시키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코로나 버블'은 일본 지방의 심각한 고민인 인구 감소 문제에도 브레이크를 잡아주고 있다. 나가노현 전체 인구는 여전히 감소하고 있지만 가루이자와의 인구와 세대수는 완만하게 증가하고 있다. 가루이자와 뿐만이 아니다. 나가노현의 인구이동조사에 따르면 올 4~9월 가루이자와와 이웃한 미요타초의 전입인구는 1000명을 넘었다.

스즈키 간이치 신슈대학 특임교수는 "일하는 방식 개혁 등으로 인해 이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지방이주를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급증했다"며 "코로나19가 수습되도 큰 흐름은 변하지 않을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총무성의 인구동향보고에 따르면 4~9월 도쿄도를 빠져나간 전출인구는 전입인구를 5500명 웃돌았다. 도쿄 인구의 순유출은 버블경제가 붕괴한 1994~1995년 이후 25년만에 처음이다. 지난달 온라인으로 실시된 지방이주상담회에서는 지방자치단체 상담 사이트가 일시적으로 다운될 정도로 참가자가 몰렸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역대 정부가 온갖 대책을 내놨지만 전혀 진전이 없었던 도쿄집중도를 해소할 마지막 찬스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