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철학적 사유를 이끌 수 있을까. 1898년 11월 21일 벨기에에서 태어난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언제나 관객을 깊은 고민 속으로 끌어들이는 화가였다. 익숙한 사물을 예상하지 못한 공간에 두거나 그림 이미지와 모순되는 설명을 그림에 적는 방식으로 보는 이에게 의문을 던진 그는 ‘그림을 그리는 철학자’로 불린다.
마그리트의 대표작으로는 1929년에 그린 ‘이미지의 배반’이 꼽힌다. 이 작품엔 담배 파이프처럼 보이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마그리트는 그림 하단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썼다. 그림을 처음 보는 이는 혼란스럽다.
힌트는 그림의 제목에 있다. 이미지의 배반. 그가 그린 파이프 그림은 파이프 모양을 하고 있을 뿐, 실제 파이프가 아니다. 20세기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이 그림에 대한 평론서에서 “이 그림은 칼리그램(글+그림)이다. 보여주는 것과 말하는 것을 은폐하기 위해 서로를 포개어 놓았다”고 썼다.
정해진 형식과 고정관념에 끝없이 도전했던 그는 1967년 68세를 일기로 타계한 이후에도 후대 미술계와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