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사들이 속속 코로나 백신 개발에 성공한 가운데 우리나라가 단 한 병(도즈)의 백신도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협상 중”이라는 말만 수개월째 반복할 뿐, 확보한 백신 물량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이웃 일본이 전 국민 예방접종에 필요한 2억5000만 병보다 7700만 병 많은 3억3000만 병을 최근 넉 달 새 확보한 성과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정부는 우선 접종대상인 취약계층의 백신접종을 내년 하반기 중 완료한다는 구상이다. 일본이 내년 상반기 전 국민 대상 접종에 돌입하는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늑장 대응인지 분명해진다. 코로나 사태 종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백신 확보에 이리 소홀하고도 ‘K방역’을 그토록 자화자찬한 것인지 허탈하다. 신규 확진자가 81일 만에 하루 300명대로 올라서 ‘3차 유행’이 우려되는 비상 상황에서 이해하기 힘든 한가한 행보다.
백신확보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는 것은 일본만이 아니다. 미국은 이달 말 2000만 병의 화이자 백신 구매를 시작으로 내년 3월 말까지 전 미국인에 접종을 완료할 계획이다. 유럽연합(EU)도 화이자 모더나 존슨앤드존슨 등에서 20억 회분의 접종 물량을 확보한 뒤 추가구매를 타진 중이다. 방역 모범국으로 손꼽히는 호주(1000만 병)나 멕시코(3440만 병) 등도 화이자 백신을 선구매하는 등 방역주권 확보에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한국 정부는 성과가 전무하지만 “걱정 말라”며 오히려 큰소리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3000만 명분을 협상 중”이라며 “백신 확보에서 불리한 상황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화이자·모더나 백신과 관련해서도 “빨리 계약을 맺자고 오히려 그쪽에서 재촉 중”이라고 강조했다. 내년 말까지 생산되는 화이자 백신 13억 병, 모더나 백신 5억~10억 병을 선진 부국들이 선주문으로 싹쓸이하다시피 한 상황과 배치되는 발언이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조마조마하다. 미국이 백신을 외교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것이라는 우려는 듣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정부는 다국적 연합체인 ‘코백스 퍼실러티’ 및 개별 제약사와의 협상 성과를 늦어도 내달 초 발표할 예정이다. 좋은 성과를 간절히 바라지만, 과잉과 왜곡의 ‘K방역 홍보’를 수없이 겪어온 터라 의구심이 만만찮다. 독감 백신 접종이 부른 혼선과 불안도 현재 진행형이지 않은가. 혹여 ‘깜깜이식 정보 통제’ ‘선택적·위압적 단속’으로 얼룩진 K방역을 백신으로까지 확대한다면 방역도 경제도 치명타를 입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