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官피아·政피아 경쟁시대

입력 2020-11-18 17:39
수정 2020-11-19 00:14
공직이 집권세력 논공행상의 제물이 되는 ‘엽관제(獵官制·spoils system)’는 미국의 7대 대통령이었던 앤드루 잭슨이 도입했다. ‘전리품은 승자에 귀속된다’는 표현대로 전쟁터에서 전리품을 노략질하듯 선거에 승리한 측이 국가의 공직을 나눠 가진 것이다.

변방이었던 서부 개척지의 변호사 출신인 잭슨은 1829년 대통령 취임 당시 “정치꾼들을 몰아내고 국민의 통치를 확립하겠다”며 개혁을 표방했다. 미국 금융계와 정부 주요직책을 ‘동부 출신 귀족’이 독점하고 있다고 본 그는 “한 사람이 공직에 너무 오래 앉아있으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국가 주요직책의 로테이션을 주장했다.

그 결과, 잭슨 대통령 임기 첫해에만 919개의 주요 공직에서 책임자가 바뀌었다. 대통령 임기 동안 전체 공직의 20%가량이 선거에서 잭슨 편에 섰던 패거리로 채워졌다. 당시의 대표적인 행정조직이었던 우체국은 한 해 동안 423개 지소의 우체국장이 교체됐다. 이런 노골적인 공직 사냥을 두고 잭슨 지지파는 ‘공직의 민주화’라고 미화했다. 하지만 정작 정권 내에선 뉴욕 출신 ‘반 뷰렌파’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 부통령이었던 ‘칼훈파’가 나뉘어 자리다툼을 이어갔다.

시공을 훌쩍 뛰어넘어 요즘 한국에서는 앤드루 잭슨 행정부도 울고 갈 법한 대대적인 자리 ‘나눠먹기’ 경쟁이 노골화하고 있다고 한다. 주요 공직과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손해보험협회,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같은 주요 금융단체 수장 자리를 둘러싸고 ‘낙하산’ 논란이 불붙고 있는 것이다.

민간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자리까지로 착지 구역이 넓어졌지만 ‘낙하산’을 손에 쥐기 위한 경쟁은 더 격화됐다. 과거에 소위 ‘관피아’(관료+마피아)가 주로 노렸던 ‘나와바리’(영역)에 ‘정피아’(정치인+마피아)가 가세하면서 이전투구(泥田鬪狗)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주요 공공기관과 민간단체의 장 자리가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들의 노후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실무경력이나 전문성과 관계없이 ‘위에서 떨어진다’는 의미가 함축된 ‘낙하산’이라는 단어, 이탈리아계 범죄집단을 지칭하는 ‘마피아’와의 합성어인 ‘관피아’, ‘정피아’라는 용어 속에 이미 낯뜨거운 자리 나눠먹기에 대한 시민사회의 준엄한 평가가 담겨 있다. 그런데도 당사자들은 부끄러워하기는커녕 호시탐탐 한자리 꿰차는 데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후안무치(厚顔無恥)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