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체를 앞둔 주요 금융협회장에 관료 출신과 함께 정치권 인사까지 거론되면서 금융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부동산 대책과 법정 최고금리 인하 등으로 ‘관치 금융을 넘어선 정치 금융’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업계를 대변해야 할 이익단체마저 정치논리에 휘말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동 걸린 관피아·정피아 낙하산문재인 대통령은 전 정부에서 반복됐던 ‘관 출신 인사’를 배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약속이 깨지는 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여신금융협회, 저축은행중앙회 회장 인선을 기점으로 관료를 모셔오는 관례가 다시 시작됐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최근 농협금융 출신 김태영 은행연합회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차기 회장 선출 절차가 시작되자 논란은 더욱 커졌다. 전직 관료들과 함께 민병두 전 국회 정무위원장도 유력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은행연합회는 다른 법적 근거가 있는 금융협회들과 달리 민법상 비영리법인이다. 회원사인 은행들이 회비를 출연하는 이익단체다. ‘은행장 출신’이 은행연합회장을 맡는 게 관례였던 이유다. 개인 여·수신과 기업금융 등 전문성을 갖춘 인사가 맡아야 한다는 인식도 강했다.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관료 출신은 금융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정부와의 연결고리 역할에 적합하다는 명분이라도 있지만 금융권과 큰 상관이 없는 정치인까지 거론되는 건 황당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민 전 위원장이 과거 국회에서 ‘핀테크 산업 혁신’ 등에 앞장서 왔다는 점도 일부 회원사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은행권은 최근 빅테크(대형 핀테크) 업계와 규제의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며 당국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여왔다.
금융권에서는 전직 금융 관료들이 유관 단체 수장을 독점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몸을 사리자 ‘무주공산’처럼 돼버린 협회장 자리에 정치인들이 가세하게 됐다는 시각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권 후반기를 맞아 일단 자리를 맡아보려는 관료와 정치인이 난립하면서 혼란이 증폭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보험협회 등도 관료들이 장악가장 ‘뒷말’이 많은 건 정지원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둘러싼 인선 절차다. 정 전 이사장이 손해보험협회장에 오른 가운데 인선 과정과 후임 거래소 이사장 공모 일정이 임기에 맞춰 진행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 전 이사장은 ‘부금회(부산 출신 금융인 모임)’의 핵심 멤버로 꼽힌다. 정 전 이사장이 금융 유관 단체나 회사의 대표에 오른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유광열 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SGI서울보증보험의 사장으로 선임될 예정이다. 금감원을 떠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이 일고 있다.
생명보험협회는 18일 회장추천위원회 1차 회의를 열고 후보군을 추릴 예정이다. KB생명보험, 교보생명 등에서 경력을 쌓은 신용길 협회장의 임기가 다음달 초 끝나기 때문이다.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사는 3선 의원 출신 정희수 보험연수원장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정 원장이 보험회사 대표들을 중심으로 물밑 작업을 꽤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관치 넘어 정치금융 어쩔 건가관료 출신 협회장을 ‘모시던’ 협회 직원들은 전직 회장들을 두고 “협회에서도 여전히 관료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는 말을 종종 한다. 업계 이익을 대변하기보다는 정부와 정치권의 의도에 발맞춰 업계에 군림하려는 태도를 보였다는 의미다. 금융권 내부에선 금융협회들이 관치금융의 방패막을 구하기 위해 ‘힘센 관료’를 모셔오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6대 금융협회 중 금융투자협회를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역대 금투협회장이 모두 업계 출신이었다.
투명한 선거제도로 관피아를 배제시킬 수 있었다는 게 증권업계의 설명이다. 금투협회장 선거에는 300여 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모두 참여한다. 업계 관계자는 “금투협회장은 수백 개 회원사의 이해관계를 정확히 대변해야 하는 전문적인 자리”라며 “전직 관료나 정치인이 이름값을 믿고 도전했다가는 망신만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대훈/정소람/박종서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