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담합 적발 이후 '뒷북' 증거 낸 업체…과징금 감면 안돼"

입력 2020-11-18 06:00
수정 2020-11-18 14:34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증거를 충분히 확보한 이후에는 입찰 담합에 참여한 업체가 자진해 담합 내역 등을 제출하더라도, 감면신청을 받을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제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과징금감면신청 거부처분을 취소한 원심 판결을 깨고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기계설비 공사업체인 A사는 2008년 10월부터 2014년 5월까지 공사 입찰에 참여하면서 20여곳의 업체들과 낙찰 예정사를 미리 정하고, 투찰 가격을 합의했다. 2014년 공정위가 조사에 들어가자 A사를 비롯한 몇몇 업체들이 공동 행위를 멈췄으나, 경쟁 입찰로 공사 이익이 줄자 이들은 2014년 10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다시 담합에 참여했다.

A사는 공정위가 2014년 5월 담합 관련 현장조사를 시작하자 이를 인정하는 증거를 공정위에 제출하며 감면신청을 했다. 감면이란 담합에 참여한 기업이 자진해 그 사실을 신고하는 경우, 첫번째 자진신고자는 과징금 및 시정조치를 완전 면제받고 두번째 신고자는 과징금 50% 감경 및 시정조치 일부 감경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공정위는 "A사가 감면을 신청하기 전에 공정위는 제보와 자료제출, 현장조사 등을 통해 이미 증거를 충분히 확보했다"며 A사의 감면신청을 기각했다. 대신 공정위의 조사에 적극 협조한 점을 감안해 과징금 23억5900만원을 20억6300만원으로 감경했다. 그러나 A사는 공정위의 감면신청 기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서울고등법원 제7행정부는 공정위가 A사에 대해 과징금 감면신청을 거부한 것을 취소해야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A사가 '1순위 조사협조자'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2순위 조사협조자'에 해당하는지 판단했어야 한다"고 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1순위 조사협조자가 되기 위해서는 공정위가 아직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조사에 협조해야 한다. 그러나 2순위 협조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이와 일부 다르다. 재판부는 "1순위 조사협조자로서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나머지 감면 요건에 대해 살펴보고 2순위 협조자에 해당하는지 보는 게 맞다"며 공정위의 처분을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반면 대법원에서 판단은 달라졌다. 대법은 "A사가 담합 증거를 공정위에 제공한 것은 공정위가 외부자의 제보를 받아 충분히 증거를 확보한 다음의 일이었다"며 "이에 따르면 A사는 법령상 '조사협조자' 감면제도에 따른 감면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또 "공정거래법령이 1순위와 2순위 조사협조자를 구분하고 있지만, 이는 조사협조자들 중 '최초로 증거를 제공한 자' 뿐 아니라 '두 번째로 증거를 제공한 자'까지 감면을 허용하고자 하는 취지일 뿐"이라며 "원심은 조사협조자감면제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 미친 잘못이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원고인 A사 패소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