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공시가격 시세 반영률을 90%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한 이후 서울 강남 등 고가 아파트 시장에서 매물이 점차 늘고 있다. 주택 보유세가 큰 폭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은 급매물 호가도 높은 수준이다. 간간이 터지는 거래에서 신고가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양도소득세 부담이 커 ‘버티기’에 들어간 집주인이 더 많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초구 급매물 30% 이상 증가
16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아파트 매물은 4만5064건으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이 발표된 지난달 27일 4만2932건 대비 2132건(5.0%)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7일 공청회를 열고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을 80, 90, 100%씩 올리는 검토안을 제시한 뒤 이달 3일 90% 안을 결정해 발표했다. 이 안에 따르면 △시세 15억원 이상 아파트는 2025년까지 △9억~15억원 아파트는 2027년까지 △9억원 미만은 2030년까지 공시가격이 시세의 90% 수준까지 오르게 된다. 이에 따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84㎡를 보유한 1주택자의 보유세는 올해 907만원에서 5년 뒤 4632만원으로 다섯 배가량 뛸 것으로 추산된다.
고가 주택이 모여 있는 강남권을 중심으로 매물이 나오면서 급매물도 증가하는 추세다. 강남구는 시장에 나온 아파트 매물이 지난달 27일 7706건에서 이날 8377건으로 671건 늘었다. 서초구는 6241건에서 6861건으로, 송파구도 4042건에서 4642건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공인중개사가 ‘급매’로 표시해 온라인에 올린 매물의 경우 서초구가 306건에서 400건으로 30.7% 늘었다. 강남구는 265건에서 307건으로 15.8%, 송파구는 221건에서 244건으로 10.4% 증가했다.
강남3구 거래량도 주춤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현재까지 집계된 10월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강남구가 157건으로, 전월(179건) 대비 감소했다. 송파구는 226건에서 161건, 서초구도 199건에서 166건으로 줄었다. 중저가 아파트가 밀집한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등의 거래량이 늘어난 것과 대조된다. 매물 늘지만 시세는 안 내려매물이 늘고 있지만 일부 단지에서는 신고가가 나오는 등 본격적인 시세 하락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6㎡는 지난 8월 22억2000만원에 거래됐으나 최근 호가는 20억원 선이 깨지고 19억6000만원까지 내려갔다. 반면 대치동 ‘대치아이파크’ 전용 119㎡는 지난 10일 32억9500만원에 손바뀜하며 신고가를 썼다. 이달 초 도곡동 ‘아카데미스위트’ 전용 128㎡와 청담동 ‘청담대림e-편한세상’ 전용 81㎡도 각각 18억원, 17억9000만원 신고가에 거래됐다.
전문가들은 일부 절세용 급매가 시장 하락을 주도하진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급매라고 하지만 대부분 시세보다 조금 싼 수준이기 때문이다. 내년 종합부동산세 기준일인 6월 1일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어 집주인들이 ‘안 팔려도 그만’이라는 식의 호가를 부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내년까지 고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일부 급매가 늘어날 수 있지만 양도세 부담이 커 버티는 집주인도 많다”며 “당분간은 눈치보기 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월세 가격이 급등하고 일부 수도권과 지방광역시 집값이 급등세를 보이는 것도 강남 집값을 떠받치고 있다. 서울 외곽 집값이 오르면서 강남 등이 상대적으로 싸보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당분간 서울 내 아파트 공급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가격이 쉽게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며 “월세 등을 높여 세입자에게 세 부담을 전가하거나 증여 등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주(9일 조사 기준) 강남·서초·송파구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각 0%로 보합세를 나타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