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5일 타결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참여국 중 일본을 제외한 13개국과 이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상태다. 이에 따라 이번 RCEP 타결로 한국은 일본과 FTA를 맺은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7년 FTA가 발효된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에 대해서는 시장 개방 범위가 넓어지는 효과가 있다. 중국 및 호주, 뉴질랜드 등은 기존 FTA에 따른 시장 개방 범위에서 큰 변화가 없다.
對日 시장 개방 따른 영향은이번 RCEP 타결 이후 한국 산업계가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은 일본과의 시장 개방 확대로 인한 파급 효과다. 소재와 부품 등 중간재 전반에서 일본 산업이 갖는 비교우위가 높아 관련 한국 기업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소재·부품·장비산업의 경쟁력 강화 대책이 어려움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당초 공산품을 기준으로 일본이 한국에 수출하는 품목의 19%만 적용받았던 관세 면제 혜택은 92%까지 확대된다. 완성차와 기계류는 제외됐지만 자동차 및 전자 관련 부품과 소재는 대부분 포함됐다. 에어백과 차량 내 전자장비 등 일본 기업이 높은 경쟁력을 갖춘 분야부터 국내 시장을 잠식해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협정 참여국들과의 협의에 따라 일본과의 협상 결과도 자세히 공개하지 않고 있어 아직 구체적인 피해 정도를 가늠하기 힘들다. 정부는 다만 “각종 보호장치를 마련한 만큼 국내 업체 피해는 최소화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소재·부품·장비 관련 핵심 품목은 10~15년의 기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관세를 철폐하기로 하는 등 국내 산업 보호장치를 마련했다”며 “일본이 한국보다 2%포인트 많은 94%의 공산품 품목에서 관세를 없애기로 하는 등 얻어낸 것이 더 많다”고 말했다. RCEP 체결로 중국과도 최초의 FTA 관계를 맺게 되는 일본이 한국 관련 협상에는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대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산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소재·부품의 상당수는 한국 기업이 수십 년간 노력했지만 일본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라며 “10년 이상의 유예기간이 있더라도 관련 제품의 일본 의존도가 어떤 식으로든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세안 시장 추가 개방은 이득아세안에서는 한국 기업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품목을 기준으로 나라에 따라 79.1~89.4% 수준이던 아세안 국가의 관세 철폐 수준이 91.9~94.5%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철강과 섬유, 자동차 부품 등에서 수출 증대가 기대된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의료·위생용품도 이번에 관세 철폐 대상에 포함됐다. 구체적으로 인도네시아에 합성수지를 수출할 때는 5~10%, 필리핀에 화물자동차를 수출하면 1~30%, 태국에 의료용품을 판매하면 10%의 관세를 물었지만 RCEP 발효와 함께 사라진다. 한국의 지난해 대(對)아세안 수출은 951억달러(약 105조8900억원)로 전체 수출의 17.5%를 차지했다.
농수산물은 기존 FTA 개방 범위 이상의 변화가 거의 없어 국내 종사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 측 설명이다. 쌀 마늘 양파 등 농산물과 새우 오징어 방어 등 수산물은 협상 범위에서 제외됐다.
이날 타결된 RCEP은 각국 의회의 동의 절차를 거쳐 발효된다. 과거 FTA 협상이 타결부터 발효까지 걸린 기간을 감안할 때 앞으로 1~2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은 이날 한국의 RCEP 최종 서명에 대해 “새로운 자유무역 블록의 확장이자 아·태 지역 경제시장 활성화를 위한 기반이 될 것”이라며 일제히 환영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