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탄생 250주년인데 ‘합창’(교향곡 9번)을 연주해야죠. 합창단 규모는 줄였지만 원작의 감동은 고스란히 전할 겁니다.”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서 만난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향 음악감독(67·사진)은 올해 마지막 공연에 올릴 작품을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시향은 다음달 18일부터 사흘 동안 롯데콘서트홀에서 ‘베토벤 합창’을 들려준다.
교향곡 9번은 베토벤(1770년 12월 17일~1827년 3월 26일)이 생전 마지막으로 남긴 교향곡이다. 1812년 주선율을 쓴 뒤 12년에 걸쳐 곡을 완성했다. 합창곡이 아니지만 4악장 ‘환희의 송가’가 걸작으로 꼽혀 합창이란 부제가 붙었다.
평소라면 최대 200여 명이 무대에 올라 연주하는 작품이다. 합창단원 100여 명에 오케스트라 단원 편성만 100명이 필요하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벤스케 감독을 괴롭혔다. “방역 지침을 지키면서 공연을 펼쳐야 하니 고역이었죠.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편곡이었습니다. 핀란드 출신 작곡가 야코 쿠시스토를 위촉했습니다.”
쿠시스토는 무대 편성을 대폭 줄였다. 합창단원은 최대 24명만 올린다. 연주자 50여 명으로 꾸리는 실내악 공연에 맞게 편곡한 것이다. “실용적인 방법을 택한 거죠. 오히려 베토벤이 들려주고 싶은 음악을 접할 기회입니다. 음악 역사상 대편성 교향곡이 부상한 지는 60여 년밖에 안 됐습니다. 원작과 비슷하게 연주할 겁니다.”
벤스케 감독은 공연에 직접 나서지 않는다. 서울시향 수석객원지휘자인 마르쿠스 슈텐츠가 지휘봉을 잡는다. 소프라노 박혜상, 테너 박승주, 베이스 박종민, 메조소프라노 이아경이 무대에 오른다.
상임지휘자로서 박수받을 기회를 포기한 이유는 뭘까. 올해는 모두가 베토벤에 열광하는 시기. 벤스케 감독은 ‘모험’을 택했다.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은 작품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이달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릴 정기연주회 레퍼토리로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1번’과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장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3번’을 들려준다.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예프 곡은 자주 연주되지 않습니다. 나조차 쇼스타코비치 피아노협주곡 2번을 처음 공연합니다. 생소하지만 들으면 놀라실 겁니다.”
음악감독으로 선임된 지 10개월째. 미국과 한국을 오가느라 자가 격리에만 2개월을 보냈다. 단원들과 완벽하게 호흡을 맞추기도 버거운 시간이다. 하지만 벤스케 감독은 첫해부터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꺼내놨다. “인기 곡만 연주할 순 없습니다. 결국 청중도 지칠 겁니다. 현대음악이든 고전이든 처음 들어도 행복하도록 공연을 꾸려야죠. ”
인터뷰 내내 ‘도전 정신’을 이야기했지만 전용 공연장에 대해선 아쉬움을 나타냈다. “올해 어느 공연이든 리허설을 딱 3시간 정도만 했습니다. 전용 공연장이 없었기 때문이죠. 공연장도 음악에서 중요한 요소인데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남은 임기 동안 단원들이 상주할 수 있는 곳을 마련해보려 합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