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가 이영도, 첫 SF 단편집 나왔다

입력 2020-11-15 17:16
수정 2020-11-16 00:54
국내 대표 판타지 소설가인 이영도가 첫 공상과학(SF) 단편소설집 《별뜨기에 관하여》(황금가지)를 출간했다. 이 작가는 대표작 《드래곤 라자》 《눈물을 마시는 새》 등으로 국내는 물론 일본과 대만, 중국에서 200만 부 이상 판매고를 올린 인기 소설가다.

이번 소설집은 2000년 이후 발표된 이 작가의 단편소설 가운데 SF 장르 10편을 골라 엮었다. 지구인의 성장 파트너가 된 외계문명과의 이야기를 다룬 ‘위탄인 시리즈’ 네 편이 중심이다. 시리즈의 첫 이야기인 ‘카이와판돔의 번역에 관하여’는 문화 교류의 짝으로 지정된 외계인 ‘위탄인’의 동화책 ‘카이와판돔’을 지구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 중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북한 ‘문화어’와 한국어 대신 영어가 더 자연스러운 손자를 마주한 늙은 교수의 모습을 통해 소멸될 언어에 대한 우려의 메시지가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이후 도래한 우주 시대를 조명한 두 번째 소설 ‘구세주가 된 로봇에 대하여’를 거쳐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인 ‘별뜨기에 관하여’는 인류와 위탄인이 함께 우주에서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재치 있게 담아냈다. 인류가 새로운 외계문명의 동반자로 함께 광활한 우주를 개척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연대’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되짚어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시리즈 전체의 주제의식을 대표한다. 마지막 작품인 ‘복수의 어머니에 관하여’는 우주 시대를 누리게 된 지구 문명을 배경으로 발생하는 기이한 우주 연쇄살인을 풀어냈다. 소설 내내 오랜 기간 판타지 소설로 다져온 특유의 유머러스한 전개와 예측불허의 반전이 읽는 맛을 더한다.

위탄인 시리즈와는 다른 장르 소설인 ‘나를 보는 눈’은 종말적 세계관을 다뤘다. 눈 속에 숨어지내며 인간을 잡아먹는 설어를 피해 주인공들이 목숨을 건 여정을 펼친다.

소리꾼을 주인공으로 잡아 ‘노래’를 통해 인류의 파멸과 구원을 다룬다는 독특한 설정이 이영도식 판타지 색채를 제대로 보여준다. 부모 세대를 바라보는 자식 세대의 시선과 임금체불 등 청년 노동에 관한 이야기 등을 녹여냈다. 현실의 벽에 막힌 청년 세대의 눈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려는 시각이 담겨 있다는 점은 기존 이영도식 소설과 차별화된 부분이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