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해진 회계업계…감사 업무 확 늘고 징계·소송 '지뢰밭'

입력 2020-11-15 17:04
수정 2020-11-16 02:00

신(新)외부감사법 도입 이후 기업뿐만 아니라 회계법인도 확 달라진 영업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주기적 지정제로 새로 맡게 된 기업이 늘어난 데다 내년 초까지 240여 개 중견·중소기업의 내부회계관리 감사까지 추가로 끝내야 해 업무 강도가 예전보다 세졌다는 평가다. 게다가 기업의 회계분식을 은폐했다는 혐의로 최근 한 회계법인과 회계사가 검찰로부터 기소당한 데 이어 정부 정책과 관련한 실사를 맡았다가 압수수색을 당하는 회계법인까지 나오는 등 회계업계가 수난을 겪고 있다. 회계사들은 자칫 잘못하면 징계와 소송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 압박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15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주기적 지정제로 새로 감사기업을 배정받은 상당수 회계법인은 이른바 ‘회색지대’ 항목을 놓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011년 전면 도입된 국제회계기준(IFRS)은 기업이 개별 사안을 경제적 실질에 맞게 회계 처리할 수 있도록 기본 원칙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기업이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하는 방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주는 ‘원칙주의 회계기준’이다. 따라서 판단 기준이 불명확한 회색지대가 많을 수밖에 없다. 새로 기업을 지정받은 회계법인 입장에선 전임 감사인의 판단을 못 믿는 건 물론이고 유권해석을 받아도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회계처리 논란이 대표적이다.

회계법인들은 올해부터 내부회계 감사제도의 첫 적용 대상인 중견기업에 대기업 수준의 절차를 요구해야 하는지도 고심하고 있다. 중견 회계법인 관계자는 “절차가 미흡한 기업에 무턱대고 비적정 의견을 낼 수는 없기 때문에 기업에 이런저런 요구를 하면서 절차 구축을 유도하느라 일이 몇 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감사 품질 높이려 조직·인력 보강 나서 신외감법은 규정 위반 처벌을 강화했다. 고의 또는 중과실 분식회계 사건에 연루된 회계사는 실형을 피하기 어렵다. 징역형은 5~7년에서 10년으로 늘었고 자산 1조원 이상 기업에서 1000억원 이상 규모의 분식회계 사건에 가담하면 최고 무기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다. 투자자들로부터의 소송 위험도 높아졌다. 작년 말 기준 20개 회계법인이 124건, 소송가액 8872억원 규모의 소송을 당했다.

이 때문에 감사현장 분위기는 훨씬 팍팍해졌다. 예전처럼 한 회계법인이 특정 기업을 오랫동안 감사할 때는 경미한 위반은 덮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주기적으로 감사인이 바뀌기 때문에 봐주기도 어렵다. 감사 절차를 어겨 금융감독원의 제재를 받은 회계사는 2017년 113명에서 지난해 177명으로 늘었다. 경력 20년의 한 회계사는 “과거엔 감사를 나가면 기업 재무제표 작성을 도와줄 정도로 편의를 봐주기도 했다”며 “지금은 그런 요구를 하는 기업도 없지만 회계법인에서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회계법인들은 전사적인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삼정KPMG회계법인은 지난 3월 품질관리실 산하에 감사품질관리를 전담하는 심리실장을 임명하고 전담 인력을 보강하는 등 조직을 확대했다.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감사가 엄격해지면서 회계사의 자부심이 높아진 측면이 있지만 업무 강도는 세지고 심리적 부담은 늘었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