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에서 터지는 '추미애 리스크'…"이제 좀 멈춰달라"

입력 2020-11-15 13:16
수정 2020-11-15 19:12

여권 내에서 ‘추미애 피로감’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과 사사건건 부딪히면서 전선을 넓혀 놓았지만, 제대로 주워 담지 못한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 국정감사,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 등 답변에서 추 장관의 잇단 강경 발언은 필요 이상의 갈등을 불러온다는 지적도 있다. 당 일각에선 이러다가 중도층 마음을 잃어 내년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추 장관에 대한 여권의 불만이 잠재되기 시작한 것은 아들 병가 특혜 의혹과 관련, 거짓말 논란이 불거지면서다. 추 장관은 아들 병가 연장 문제와 관련해 보좌관이 부대에 전화했는지 여부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에서 추 장관은 부대 관계자 전화번호를 보좌관에게 알려줬고, 보좌관은 부대 관계자와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익명을 요구한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병가 부분에서 국민의힘 등 야당에서 무리하게 몰아붙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추 장관은 적어도 거짓말 한 부분에 대해서는 진솔하게 국민들에게 사과했어야 마땅하다”고 했다. 이어 “추 장관이 오히려 ‘짜집기’라며 ‘거짓말 프레임’으로 몰아가 여론을 악화시켰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또 병가 연장·휴가 사용 문의를 추 장관 아들이 직접하지 않고 보좌관이 한 데 대해서도 “공(公)과 사(私)를 구분 못하는 처사”라는 지적이 당 내에서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런 불만들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추 장관이 검찰 개혁을 총대 메고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권 내 분란이 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야당의 공격에 빌미를 더 얹어주는 꼴이어서 불만이 있어도 삭인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민주당 비주류 의원은 “자칫 친문 세력의 표적이 될 수 있어 조심스런 분위기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최근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계기는 추 장관이 ‘피의자 휴대전화 비밀번호 공개법안’추진을 강행하면서다. 추 장관이 이 법안을 추진하는 것은 한동훈 검사장이 휴대폰 비밀번호를 내놓지 않아 ‘채널A 강요미수’의혹 수사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비밀번호를 악의적으로 숨기고 수사를 방해하는 경우 법원 명령 등 일정 요건이 갖춰지면 잠금 해제 등을 강제하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처벌하는 법률을 제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는 물론 범여권 성향의 정당까지 반발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휴대폰 비밀번호는 당연히 진술 거부의 대상이 되며 이를 밝히지 않는다고 해 제재를 한다면 헌법상 진술거부권과 피의자의 방어권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도 “국민의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는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 인권 침해에 앞장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도 “진술거부권, 묵비권은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 있으나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며 역시 철회를 요구했다.

민주당은 곤혹스런 표정이다. 추 장관에게 공식적으로 철회를 요구하지 못하지만 우회적인 불만들이 나오고 있다. 한 당직자는 “민변과 정의당마저 비판하고 나오면 적정한 선에서 물러나야 하는데 추 장관이 그대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여권 전체를 코너로 몰아넣은 형국”이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추 장관의 국회 답변 태도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의원들의 질의가 끝나기 전 말을 자르고 답변에 나서는 등 과잉대응해 여권에 부담을 준다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 정성호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추 장관을 향해 “정도껏 하시라”고 한 것은 여당 의원들의 잠재된 불만 표출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 위원장은 지난 12일 예결위 전체회의 도중 추 장관이 의원들의 질의에 말을 끊고 답변에 나서면서 설전이 이어지자 “질문을 듣고 답하라. 다른 말씀 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이에 추 장관이 “질문 자체가 모욕적이면 위원장이 제재해달라”고 했으나 정 위원장은 “그런 질문 없었다. 정도껏 해라. 좀!”이라고 역정을 냈다.

추 장관은 지난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친애하는 정성호 동지에게’라는 제목의 편지를 띄웠다. 추 장관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노라’고 도종환 시인께서 말씀하셨듯 흔들리지 않고 이루어지는 개혁이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이어 “그 길에 우리는 함께 하기로 한 민주당 동지”라며 “서로 오해가 있을 수는 있으나 모두가 개혁을 염원하는 간절함으로 인한 것이라 여기시고 너그러이 받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국회 상임위원회라는 공적 자리에서 상임위원장과 국무위원 간에 이뤄진 일을 ‘동지’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너그러이 받아달라”고 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법무부 장관이 국회 상임위원장을 향해 ‘적과 동지’라는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대며 ‘우리는 같은 편이니 봐달라’는 식은 온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추 장관의 윤 총장 가족수사 등 잇단 수사지휘권 발동, 감찰 지시 등을 시리즈로 내놓고 수습을 제대로 못한다는 불만도 여권 내에서 나온다. 그렇다고 대놓고 이런 불만을 표시하기도 힘든다. 여권 골수 지지층들의 악플 폭탄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정 위원장은 “정도껏 하시라”고 한 뒤 이들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자 페이스북에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느낌”이라며 “딱 한 마디 했더니 하루 종일 피곤하다”고 푸념했다. 민주당이 ‘추미애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