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가로와 세로 각각 5.6m, 높이 1.77m의 드론이 상공으로 떠오르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마포대교와 서강대교 일대 3.6㎞ 구간을 비행한 이 드론은 중국 기업 이항의 ‘EH216’이었다. “우리 기업이 제조한 드론이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목소리가 나온 이유다.
행사를 주최한 정부와 서울시가 중국 제품을 고른 이유는 간단하다. 상용화된 제품이 이항의 드론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와 한화시스템은 개발 중인 모형을 이날 현장에 전시한 정도였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드론택시 기술은 중국에 비해 4~5년 뒤처져 있다”며 “몇 년 안에 이 격차를 줄이지 못하면 2040년 연 1700조원 규모로 예상되는 도심항공 시장의 주도권을 중국에 내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8년 전부터 드론택시 개발한 中업체이항이 2018년 개발한 EH216은 16개의 로터(회전날개)가 돌면서 기체를 하늘로 띄우고, 각 로터의 회전 속도를 달리해 전후좌우로 움직인다. 동력원은 배터리다. 최대 220㎏을 싣고 최고 시속 130㎞로 35㎞를 비행할 수 있다. 무인 조종도 가능하다. 지금까지 2000회 이상 유인비행에 나서 많은 데이터를 축적했다. 호주와 캐나다, 아랍에미리트 등에선 대당 30만달러(약 3억3000만원)에 판매까지 이뤄졌다.
EH216을 제조한 이항은 세계 최고의 개인용비행체 제조기술을 보유한 업체로 평가받고 있다. 도심항공모빌리티(UAM)의 가능성을 처음 제시한 기업이다. 2012년부터 개인용비행체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2016년 CES에서 EH184를 처음 공개해 주목받았다. 이에 자극을 받아 글로벌 기업과 스타트업들이 개인용비행체 개발을 시작했다. 그전까지 드론이 택시처럼 이용될 것이란 예상은 별로 없었다. 지금은 보잉, 에어버스, 우버, 도요타, 아우디, 메르세데스벤츠 등 300여 개 기업이 UAM 시장에 투자하고 있다.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독일 스타트업 볼로콥터는 2011년 시제품을 완성한 데 이어 유인비행 및 무인비행에 성공했다. 내년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의 조비는 미 항공우주국(NASA)과 비행 성능을 점검하고 있다. 일본 벤처기업 스카이드라이브도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UAM 시장은 2030년 3321억달러, 2040년 1조4739억달러 규모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中 업체에 4~5년 뒤처진 한국한국 기업 중에서는 현대차와 한화시스템이 개인용비행체를 개발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도심항공사업부를 신설해 NASA 출신 신재원 부사장을 영입했다. 올해 초 CES에서 개인용비행체 콘셉트모델(SA-1)을 공개하기도 했다. 2028년 상용화가 목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미래 3대 먹거리 중 하나가 UAM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화시스템도 미국 업체인 오버에어와 손잡고 개인용비행체를 개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우리 기업들이 세계 도심항공 시장의 주도권을 잡으려면 관련 산업 생태계 육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중국은 소형 드론 시장을 장악하면서 부품 생태계를 완성했다. 세계 드론 시장의 70%는 중국 업체 DJI가 장악하고 있다.
드론업계 관계자는 “중국 선전에는 400여 개의 핵심 부품회사들이 자리 잡고 있고, 이항 등 제조업체는 대부분 중국산 부품을 쓰고 있다”며 “한국은 드론이 미래 모빌리티(이동수단) 중 하나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지 못해 관련 산업 생태계를 키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대차와 한화시스템이 비행체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핵심 부품은 결국 미국 유럽 중국 등에서 가져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추격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기대도 없지 않다. 현대차 등이 대량 생산 노하우를 갖추고 있고, 배터리와 수소연료전지 등 동력분야에서는 한국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서다. 현대차와 한화시스템이 개발하고 있는 모델은 현존하는 비행체와 종류가 달라 경쟁력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두 회사가 개발 중인 제품은 모두 날개(고정익)가 달린 모델이다. 비행 거리가 길고 더 안전하다.
신재원 부사장은 “현대차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자동차를 많이 만드는 회사”라며 “도심항공이 일상화되면 결국 대량생산을 잘하는 업체가 주도권을 쥘 것이고, 현대차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