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등 노동·사회단체들이 주말(14일) 서울 등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민중대회를 강행키로 했지만, 정부는 말로만 자제를 요청할 뿐 수수방관하고 있다. 방역을 명분으로 기본권 침해 논란을 빚으면서까지 광복절·개천절 집회를 봉쇄했던 정부가 이번에는 방관자적 태도로 돌변한 것이다.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200명에 육박할 정도로 방역 환경이 악화한 상황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다.
이번 좌파성향 단체들의 집회에 대한 정부 대응은 보수단체의 반(反)정부 집회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개천절 집회 때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에 어떤 관용도 없을 것”이라고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광복절 집회 주동자들은 살인자”라는 극언까지 했다. 보수 집회에는 경찰버스로 겹겹이 둘러싸인 ‘재인산성’을 쌓았던 정부가 이번에는 무대책으로 일관하니 ‘선택적 방역’ ‘방역 정치’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주말집회를 주도하는 단체들은 전국 13곳에서 10만 명이 참여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최근 확진자 증가세로 거리두기 단계 상향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정부라면 응당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집회금지 행정명령이나 참가자 고발조치, 구상권 청구 등의 소리도 전혀 안 들린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여당 지도부가 “해당 단체에 지금이라도 집회를 재고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마지못해 한마디 한 게 전부다. 청와대도 “집회 주최자들이 100명 미만의 방역수칙을 준수할 것으로 본다”며 오히려 집회 대변인 역할을 자처했다.
집회 주체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네 편은 봉쇄, 내 편은 방관’을 오가는 정부의 ‘고무줄 방역’에 국민은 허탈과 분노를 넘어 공포마저 느낀다. 코로나 신규 확진자 수가 엿새 연속 세 자릿수이고, 어제는 191명에 달할 만큼 확산 위험이 부쩍 커졌음에도, 질병관리청조차 아무런 경고가 없다.
방역조차 진영논리로 대응하면서 K방역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권 입맛에 따라 집회를 봉쇄하거나 방관하는 것은 전염병 대응에도, 국민 신뢰를 얻는 데도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좌우를 가려가며 감염된다는 말인가. 정부는 당장 엄정하고 불편부당한 방역대책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