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 금융완화에…증시 '잃어버린 30년' 회복

입력 2020-11-12 17:23
수정 2020-11-13 01:47
일본 증시가 8거래일 연속 오르며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990년대 초반 ‘거품경제’ 때 수준으로 회복했다. 실물경제 회복 영향도 있지만 유동성 장세라는 분석이 아직은 우세하다.


12일 닛케이225지수는 전날보다 171.28포인트(0.68%) 오른 25,520.88로 마감했다. 일본의 거품경제 막바지였던 1991년 3월 22일 26,613.19 이후 30년 만의 최고치다. 역대 최고치는 1989년 12월 29일 기록한 38,915.87이다. 4개월째 23,000선을 오르내리던 주가가 이달 들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상승하면서 단숨에 25,000선을 넘었다. 이 기간 상승률은 11.07%다.

미국 대선 결과가 사실상 확정되면서 올해 증시 최대의 불확실성이 사라진 데다 일본은행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지속하면서 주가가 힘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일본은행은 주요국 중앙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상장지수펀드(ETF)를 직접 사들여 주식시장을 떠받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주가가 급락한 올 3월부터는 연간 ETF 매입 규모를 6조엔(약 64조원)에서 12조엔으로 두 배 늘렸다. 일본은행이 ETF를 1조엔어치 사들일 때마다 닛케이225지수는 260포인트 오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뿐만 아니라 7조4000억엔이던 기업어음(CP) 및 회사채 매입 한도를 20조엔으로 늘리고, 국채 매입 한도를 폐지해 무제한 양적완화를 실시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두 차례에 걸쳐 추경 예산을 편성해 60조7000억엔을 쏟아부었다. 코로나19 이후 80조엔 이상의 경기 부양 자금이 시중에 풀리면서 유동성 장세가 펼쳐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국민연금인 공적연금(GPIF)도 2014년부터 국내 주식 운용 자산 비중을 12%에서 25%로 대폭 늘려 일본증시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올 3월 말 현재 일본 증시에 투입된 일본은행과 GPIF의 정책자금만 67조엔으로, 전체 시가총액의 12%에 달한다.

지난 8월 말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 일본 주식을 대거 사들인 것도 투자심리를 달궜다. 버핏이 이끄는 투자회사 벅셔해서웨이는 6700억엔을 투입해 미쓰비시상사 등 일본 5대 종합상사 주식을 5% 이상씩 사들였다. 주식시장 저변도 넓어졌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처음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닌자개미)들이 등장했다. 닌자개미들 덕분에 올해 일본 온라인 증권계좌 개설 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기업 실적도 회복 중이다. 2020회계연도 상반기(4~9월) 실적을 발표한 상장사의 32%(305개사)가 올해 전체 순이익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반면 실물경제가 거품경제 때 수준을 회복했다고 단정할 수 없는 만큼 주가 상승세가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오는 18일 발표되는 일본의 3분기 경제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연율 18.3%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으로 기록된 2분기 감소폭(-28.1%)을 만회하지 못할 뿐 아니라 미국(33.1%)과 유럽연합(61.1%)에 비해 부진한 수치다.

기업 실적이 회복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예년보다 부진한 점도 추가 상승세에 부담 요인이다. 올 상반기 도쿄증시 1부 상장사의 전체 순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 감소한 8조1000억엔이었다. 14조2000억엔이었던 2018년 상반기의 절반 수준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