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4류 정치'가 국회 풍수 탓?

입력 2020-11-12 17:20
수정 2020-11-13 00:11
1975년 8월 15일 서울 여의도 33만㎡ 부지에 국회의사당이 준공됐을 때 대다수 풍수지리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민의(民意)의 장(場)’이 들어서기에는 풍수적으로 부적절한 곳이었던 탓이다. 여의도가 모래와 퇴적물이 쌓여 넓어진 섬이라는 점부터가 그렇다. 풍수지리에서 단단한 암반이 아닌, 모래나 퇴적층은 기(氣)가 모이기 힘든 구조로 본다. 기운이 허망하게 빠져나가 이런 곳에 자리잡은 기업들은 심한 부침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땅 모양을 봐도 좋지 않다. 의사당은 ‘배가 나아가는 형상(행주형·行舟形)’인 여의도에서도 물러설 곳 없는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이런 곳에선 죽기살기식 싸움이 벌어지기 십상이다. 육영수 여사 묫자리 잡는 데도 풍수지리 전문가의 자문을 받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런 곳에 의사당 짓는 것을 “OK” 했으니, 호사가들 사이에선 “국회의원들이 싸우는 데 정신 팔려 국정에 신경을 못 쓰도록 그런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풍수지리의 과학성을 인정하든 안 하든 여의도공원 서편(서여의도) ‘정치 1번지’에선 정권에 상관없이 여야가 싸우지 않는 날이 드물었다. 동여의도에 밀집한 증권사들 중 상당수의 주인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여의도에 사무실이 있는 고위 공무원들은 나쁜 기운을 막는다며 가구를 재배치했고, 한 증권사 대표는 “배 밑에선 엔진이 힘차게 돌아야 한다”며 사옥 꼭대기에 있던 직원식당을 지하로 옮기기도 했다.

이처럼 얘깃거리가 많은 여의도에서 터줏대감 격인 국회의사당을 어쩌면 못 볼지도 모르게 됐다. 여당이 국가균형발전을 명분 삼아 세종시로 이전을 재추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워낙 파장이 큰 사안인 만큼 정치권은 물론 풍수지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화제다. 대개는 “정치적 혼란을 끝내려면 옮기는 게 좋다”는 의견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권 잡는 데 눈멀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풍수지리로 바꿀 수 있을까. 삼권분립 같은 헌법가치가 허물어지고 ‘편 가르기’가 횡행하는데도 대통령과 거대 여당의 지지율은 요지부동이다. 민심이 이런데 야당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한술 더 떠 반(反)시장 포퓰리즘 경쟁에 합류한 판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4류 정치의 불편한 진실을 가리기 위해 풍수지리를 핑계로 삼은 것은 아닐까.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