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바이드노믹스, 문재인 정부 정책과 같다고?

입력 2020-11-12 17:21
수정 2020-11-13 00:13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60번째가 ‘탈원전 정책으로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이다. 61번째 ‘신기후체제에 대한 견실한 이행체계 구축’은 온실가스 감축이다.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인 문 대통령이 이산화탄소의 실질적인 배출량을 제로로 만든다는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두 과제가 충돌하고 있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이 현재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가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산업의 적응력을 고려하면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에너지 믹스’로 가려면,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원전의 전략적 활용에도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유럽에서는 탄소중립을 목표로 수소경제 전환을 앞당기려면 원전을 통한 수소 생산이 해결책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2050년 탄소중립을 공약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재생에너지와 함께 원자력 기술투자 확대가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원전 기술도 탄소중립을 위해 활용하겠다는, 미국 민주당의 기술중립적 선택이다.

“바이드노믹스(Bidenomics)가 우리의 그린뉴딜과 아주 일치한다.” 더불어민주당의 이낙연 대표, 김태년 원내대표, 한정애 정책위원회 의장 등이 하는 말이다. 원전에 대한 관점 자체가 반대인데 뭐가 같다는 건지 알 수 없다.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는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한다. 그린뉴딜을 말하는 문 정부는 전력요금이란 가격기능을 어떻게 정상화할지 그것부터 묵묵부답이다. 발전 경쟁에서 멈춰선 전력산업 구조개편도 그렇다. 발전 경쟁이 왜곡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바로잡을지, 판매 경쟁은 어떻게 할지 청사진도 없다.

여당은 미래자동차, 5G(5세대) 통신, 인공지능 등 바이든 공약이 ‘한국판 디지털 뉴딜’과 같고, ‘오바마 케어’ 개선은 청와대의 바이오헬스 육성과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공정경제 3법’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당은 미국의 규제시스템이 한국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잊은 듯하다. 네거티브 규제방식으로 바꾸지 못해 규제샌드박스에나 의존해야 하고, 언제 무슨 규제법이 튀어나올지 몰라 불안해하는 게 한국의 디지털 뉴딜이요, 바이오헬스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마찬가지다. 백보를 양보해 미국처럼 기업에 경제적 자유를 주고 그러면 또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기업 지배구조를 강제로 바꾸려 하고 기업 활동을 사후적 규제가 아니라 사전적 규제로 가두겠다는 공정경제 3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을 규제하려는 바이든의 움직임이 문 정부의 공정경제와 닮았다는 것도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미·중 충돌 이전과 이후의 미국이 같을 수 없다. 미국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자국 기업 우선주의는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미국 정부가 스스로 플랫폼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죽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바이든과 공약 궁합이 맞아 정권을 재창출해야 할 명분이 또 하나 생겼다는 한국 민주당의 눈에는 미국과 한국의 리쇼어링 정책도 닮은 것으로 비치는 모양이다. ‘미국에서 제조하라’는 바이든의 ‘메이드 인 올 오브 아메리카(Made in all of America)’는 닮은 게 아니라 한국에 큰 위협이다. 말과 따로 노는 문 정부의 기업 유턴과 해외 첨단산업 유치 전략에 치명타가 될 공산이 크다. 이대로 가면 국내기업들의 투자가 미국으로 쏠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부(富)가 아니라 근로에 대한 보상, 최저임금 인상 등의 바이든 공약을 보고 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친노동’과 같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여당이 바이든 당선인을 바라보는 미국 기업들의 스탠스를 파악하고 그렇게 말하는지 의문이다. 그곳에는 바이든이 기업을 알고 있다는 신뢰, 예측가능한 정책으로 가리라는 믿음이 있다. 지금의 한국에는 최소한의 신뢰와 믿음마저 사라질 판이다.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