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 낙조 1번지 태안충남 태안은 서해안에서 손꼽히는 낙조 명소다.
사계절 해가 뜨고 다시 지는 것이 자연의 순리지만 11월 태안의 낙조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낭만적이다.
석류처럼 붉은 태양이 황금빛 여운을 남기고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그 짧은 순간의 황홀을 즐기기 위해 수많은 이가 서쪽 바다로 향한다.
낙조만이 태안의 전부가 아니다. 천연방파제가 깔린 내파수도와 등대지기가 그리운 옹도까지 풍경의 정찬이 끝없이 펼쳐진다. 마음이 쓸쓸해지면 태안으로 가자. 풍경이 말없이 위로를 전해줄 것이니. 태안 낙조 1번지 할미·할아비 바위
태안의 낙조 1번지는 안면도 꽃지해변에 있는 할미·할아비 바위다. 변산의 채석강, 강화의 석모도와 함께 서해의 3대 낙조로 꼽히는 이곳은 매일 간조 때가 되면 해변에서 할미·할아비 바위까지 이어지는 바닷길이 열린다. 할미·할아비 바위가 있는 꽃지해변은 여행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해당화가 곱게 피어나는 곳이라는 예쁜 이름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꽃지가 이토록 유명해진 데는 두 바위섬 사이로 떨어지는 아름다운 낙조가 한몫했다.
할미·할아비 바위에서 펼쳐지는 낙조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감동적이다. 낙조가 시작될 즈음 잔잔한 수면 위로 황금빛 햇살이 은은하게 하늘을 채운다. 겨울철에는 할미·할아비 두 바위 사이로 해가 떨어진다.
할미·할아비 바위에는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 신라 흥덕왕 때인 838년 해상왕 장보고가 청해진에 주둔해 있을 때 당시 최전방이던 안면도에 승언이라는 장군을 지휘관으로 파견했다. 그 장군의 부인 미도는 빼어난 미인이었고 이 둘은 무척 금실이 좋았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이들의 금실을 부러워하며 시기해 장군은 바다 위에 있는 두 개의 바위섬에 집을 짓고 부인과 떨어져 살기로 했다. 그러던 중 장군이 먼 곳으로 원정을 가 돌아오지 않자 미도는 매일같이 꽃지해변에 나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그리워했다. 그리움이 사무쳤는지 미도는 죽어서 할미 바위가 됐고 바다 쪽에 또 다른 큰 바위가 생겨나면서 자연스레 할아비 바위가 되었다. 마치 큰 바다로 나간 남편을 바라보듯 나란히 서 있는 바위가 애틋하게 보이는 이유는 단지 전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꽃지해변 밑으로 삼봉, 기지포, 안면, 두여, 밧개, 두에기 등 이름처럼 매력적인 해변이 쭉 연결돼 있다. 태안의 해변은 어느 곳을 낙조 명소라고 꼽기 어려울 정도로 고유의 매력을 지닌 데가 많다. 그중 고남면 장곡리의 운여해변은 사진작가들이 애호하는 신흥 일몰명소다. 태안에는 ‘여(礖)’로 끝나는 지명이 많다. 여는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를 이른다. 운여는 ‘윗여’라는 뜻이다.
운여해변은 방파제 남쪽 끝에 가지런히 심긴 소나무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밀물 때면 방파제 너머로 물이 밀고 들어와 자그마한 호수가 형성되는데, 여기에 비치는 솔숲은 장관을 연출한다. 강원 삼척의 ‘솔섬’이 옛 모습을 잃은 이후 더욱 귀한 장소가 됐다. 여름에는 은하수를 촬영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천연조약돌의 방파제 내파수도
태안반도의 서남단,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에서 뱃길로 한 시간 남짓 배를 타고 가면 내파수도(內波水島)라는 섬이 나온다. 이곳에는 어느 섬에서도 볼 수 없는 구석(球石) 천연 방파제가 있다. 구석은 파도에 씻겨 닳고 닳아 만들어진 조약돌을 말한다. 형형색색 때깔 고운 구석은 자연이 조각한 작품이다. 내파수도의 천연 방파제는 안면도를 바라보는 방향, 즉 섬의 동남쪽에 있다. 방파제 안쪽에는 조약돌 해변이 펼쳐져 있어 물놀이하기에도 좋다.
내파수도 바깥쪽(서쪽)으로 3㎞ 지점에는 외파수도가 있고, 섬의 연안에 있는 기암괴석과 산 정상의 동백나무숲이 장관이다. 조선시대에 중국의 상선 및 어선들이 우리나라와 왕래할 때 폭풍을 피하거나 식수를 공급받기 위해 정박했던 곳으로 알려진 섬이다. 이곳에는 ‘파수도의 파수꾼 안종훈 선생 공적비’란 비석이 있다. 충남 도지정기념물 제64호로 지정된 ‘구석(球石) 방파제’를 지켜낸 안옹을 기리는 것이다. 지금은 천연기념물 제511호로 지정됐다. 내파수도 서쪽에는 억새가 많이 자라 가을이면 하얗게 만발한 억새꽃이 바람에 날리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충남 유일의 유인등대섬 옹도
‘얼어붙은 달 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겨울의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누구나 어릴 적 한 번쯤은 흥얼거려봤을 ‘등대지기’다. 이 동요가 떠오르는 아주 작은 등대섬 옹도가 태안에 있다. 옹도는 1907년 등대가 세워지고 100여 년간 외부인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 등대의 불빛은 35~40㎞ 거리에서도 식별할 수 있으며 주로 대산, 평택, 인천항을 입출항하는 선박들이 서해안 항로를 따라 이곳을 거쳐 지나간다. 2007년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등대 16경에 포함됐고, 2013년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안흥항에서 배를 타고 30분가량 걸리는 옹도는 그 모양이 마치 옹기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0.17㎢의 아담한, 충남 유일의 유인등대섬이다. 선착장을 따라 등대로 올라가는 산책로에는 동백나무 군락이 밀집돼 있다.
글·사진/태안=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