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59분. 하루의 끝이자 또 다른 하루를 열기 위한 시간, 우리들은 어떤 생각들을 할까. 단조롭게 혹은 복잡하게 얽히는 다양한 감정의 조각들이 새벽을 채운다. 이 새벽의 감정을 이쿄(IKYO)의 랩, 오터(otter)의 사운드, 오투(The o2)의 프로듀싱으로 풀어냈다. 정해진 콘셉트는 없다. 새벽 시간을 타고 흐르는 감정의 흔적을 유연하게 담아냈을 뿐.
이쿄, 오투, 오터는 지난달 새 앨범 '23:59'를 발표했다. 앨범 공개 전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쿄와 오투는 "전곡을 정주행을 하시면 '아 얘네가 헛짓을 하진 않았구나'라고 생각하실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들은 '23:59'이 다채롭게 느껴질 수도, 혹은 난잡하게 생각되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임의로 콘셉트를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투는 "센치해졌을 때 반응이 다양할 수 있지 않느냐. 우울하게 갈 수도 있고, 오히려 차분할 수도 있다. 또 흥분하고 에너지를 방출하는 밤 문화 이미지도 있듯이 이번 앨범의 곡들도 여러 개로 나뉜 것 같다. 센치함에서 시작하지만 방식은 다양하게 나온다"고 설명했다.
평소에도 새벽 작업을 주로 하는지 묻자 이쿄는 "아침에 일어나서 보통 11~12시에 작업실을 간다. 가자마자 잘 될 수도 있지만 성격 상 완성해야겠다 싶은 것도 하루에 잘 안 끝내는 편이다. 작업은 낮, 밤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다. 근데 오투랑 하는 건 저녁, 새벽까지도 작업을 많이 한다"고 답했다. 그는 "앨범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가볍게 접근이 어렵더라. 작업을 하다가 시간을 보면 꽤 흘러 있었다. 그래서 앨범 제목도 그렇게 지었다"고 말했다.
앨범 전반적으로 클립스(Clipse), 팀발랜드(Timbaland), 미시엘리엇(Missy Elliott) 등이 떠오르는 2000년 초반 사운드를 녹였다. 타이틀곡 '3000' 역시 2000년대 초 유행했던 사운드를 재해석한 곡이다. 오투는 "아프리카 원주민 음악 분위기에 꽂혀 있었던 때에 기타를 치면서 '라이온킹' 오프닝 같은 음악을 만들어 이쿄 형한테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근데 별로라고 하더라"며 "이후에 원주민들이 의식 같은 걸 할 때 부르는 느낌의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샘플을 찾다가 좋은 게 있어서 악기를 하나씩 쌓다가 완성됐다. 형한테 보냈는데 좋아서 소리를 지르더라. '아 됐다'라는 생각이 들어 완성시켰다"고 전했다.
이어 이쿄는 "오투와 레퍼런스들을 서로 공유하는데 사실 처음하려던 것과는 달랐다. 그런데 그게 상관 없을 정도로 노래가 좋았다"며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곡을 받으면 0에서 1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데 오투는 10개에서 1개를 고민한다. 아이디어가 많아서 어떤 게 어울릴지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3000'은 비트가 되게 좋았다. 2000년대 초 미국에서 유행했던, 클럽에서 나올 법한, 내가 좋아하는 느낌이었다"면서 "그런 게 한국에는 별로 없었다. '왜 이런 게 없었지?'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그럼 내가 하면 되지'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되게 재밌게 완성한 곡이다"고 만족감과 자신감을 동시에 드러냈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누구보다 단단한 뚝심이 느껴지는 래퍼 이쿄,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의 유쾌한 열정파 프로듀서 오투. 어떻게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음악을 하게 된 걸까. 문득 이들이 시작점이 궁금해졌다.
먼저 이쿄는 "랩을 제대로 한 건 스물 다섯, 여섯 즈음이었다. 그 전까지는 그냥 노래하는 걸 좋아하고, 비트를 찍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랩을 해봐야겠다', '열심히 해보자'고 결심한 건 전역한 후인 26살 때였다. 랩을 시작한 지 3~4년 됐다"고 밝혔다.
오투는 "제대로 음악을 하고 싶다고 한 건 작년부터다. 그 전에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취미로 비트를 만들었다"면서 "중학생 때 제일 친했던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때가 Mnet '쇼미더머니3'를 할 때였는데 친구가 계속 힙합이 뭔지 소개시켜주겠다면서 알려주더라. 그러다 또 다른 친구의 추천으로 비트 메이킹을 하게 됐는데 너무 재밌었다"고 했다.
나이대도 다른 형, 동생의 만남은 꽤 흥미로웠다. 도봉구청이 일자리 창출 사업의 일환으로 운영하고 있는 오픈창동(OPCD)에서 진행한 힙합 앨범 프로젝트 '이주민(YIZUMIN)'을 통해 호흡을 맞췄다. 지난해 첫 앨범을 낸 데 이어 올해도 송캠프를 거쳐 두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을 냈다. 이쿄는 해당 프로젝트를 떠올리며 "창작자들에게 정말 좋은 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메일을 보내고 직접 내가 손을 뻗어야 몇 군데에서 연락이 오는 구조인데 각자의 자리에서 수련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소통하고 부대끼면서 음악을 할 수 있었다"며 흡족해했다.
이쿄와 오투는 특히 결과가 아닌 과정을 볼 수 있다는 점에 감격했다. 두 사람은 "무에서 유로 가는 게 보인다. '진짜 잘하는 애구나'라는 걸 옆에서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니까 좋다"면서 "내가 모르지만 존재하고 있던 정말 잘하는 사람들, 혹은 앞으로 잘 할 사람들인 거다. 이 원석 같은 사람들을 미리 만나서 같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난 계기가 됐다. 친구도 몇명 더 생겼다"며 '이주민' 프로젝트에 고마움을 표했다.
그렇게 좋은 음악적 동료가 된 이쿄와 오투, 그리고 오터였다. 이들은 앞으로도 흔쾌히 함께 음악 작업을 해나갈 의향이 있다고 했다. 이쿄는 "각자 음악을 하고 있는데 최근에 오투가 '형 또 할래요?'라고 해서 '좋다'고 말했다. '23:59'보다 더 재밌는 작업이 될 것 같다"며 웃었다. 오투 역시 "하면 할 수록 재밌다. 혼자할 때는 훈련을 하는 느낌이었는데 같이 하니까 내가 음악을 왜 좋아했었는지 그 기억이 나더라. 그래서 계속 놀러오라고 하고, 만나서 작업하고 있다"고 전했다.
"항상 큰 기대 없이 작업했어요. 그런데 발매 텀이 조금씩 생기니까 노력한 만큼 기대도 살짝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최대한 비우면서 하려고 해요. 앞으로도 오버하지 않고 재밌게 하려고 합니다."(이쿄)
"비트 메이킹 영역에서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은 것 같아서 실력을 더 키우면서 동시에 재미도 잃지 않으려고 해요. 그때 그때 좋아하고 만들고 싶은 음악이 바뀌는데 그것들을 충실하게 제 음악에 담아내고 싶어요."(오투)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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