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역사적인 날"…애플, 반도체 '신흥 강자'로 뜬다

입력 2020-11-11 11:53
수정 2021-02-09 00:03

애플이 14년 만에 인텔과 결별을 선언하고 자체 설계한 칩을 PC에까지 넣은 제품을 선보이면서 반도체 '신흥 강자'로 떠오를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10일(현지시간) 애플은 신제품 공개행사를 통해 애플이 직접 설계한 '애플 실리콘' 칩셋인 'M1'과 이에 기반을 둔 신형 노트북 맥북 에어, 맥북 프로, 소형 데스크톱 맥미니 등 3종의 신제품을 선보였다.

이번 신제품 공개 행사의 주제는 '원 모어 띵(한 가지 소식을 더)'였다. 이는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가 신제품 행사 발표 중에 즐겨했던 말이다. 잡스는 종종 발표 도중 마무리 발언을 하고 퇴장할 것 처럼 하다 신제품이나 새로운 기능을 추가로 하나 더 깜짝 공개하며 이같이 말하곤 했다.

그만큼 이번에 발표한 M1이 애플에 의미있는 혁신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역시 이날 "오늘은 맥과 애플에 역사적인 날"이라고 했다.

애플은 그간 반도체 업체를 포함한 대부분의 부품을 아웃소싱해오며 아이폰·아이패드·맥·에어팟 등 전자기기 제국을 만들어 왔다. 2010년부터 아이폰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을 자체 생산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맥에는 인텔 칩을 탑재해 왔다.

M1은 기존 애플 칩처럼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설계됐다. 8코어 중앙처리장치(CPU)와 8코어 그래픽처리장치(GPU), 인공지능(AI) 기능을 수행하는 16코어 뉴럴엔진, D램 등을 모두 하나로 합친 시스템 온 칩(SoC) 방식의 통합 프로세서다.

애플이 PC에서도 자체 칩을 설계하려는 이유는 인텔 등 외부 의존을 줄이면서 자체 매출을 확대하고 동시에 기기 성능을 끌어올릴려는 계획으로 풀이된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 다른 애플 기기와 손쉽게 소프트웨어를 호환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그동안 축적한 칩 설계·개발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란 설명이다.


사용자 측면에선 아이폰과 아이패드 앱을 번거로운 전환 과정 없이 맥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고, 개발자 측면에선 PC용, 모바일용으로 따로 앱을 개발하지 않아도 돼 효율적이다.

실제 애플에 따르면 PC 중앙처리장치(CPU) 중 최초로 대만의 TSMC 5나노미터(nm) 공정에서 제작된 M1가 탑재된 맥은 인텔 중앙처리장치(CPU) 내장 PC 대비 △속도 2.5배 △전력 효율 25% △그래픽 성능 3.5배가 개선됐다. 반도체 시장에서 영향력 커지는 애플애플은 최근 10년 동안 12건의 반도체 관련 기업을 인수했다. 1999년과 2008년 각각 인수한 레이서그래픽스와 P.A.세미의 수백명 단위의 인력으로 시작한 애플의 칩 사업부는 현재 수천명 규모의 칩 엔지니어 집단으로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의 칩 사업부는 현재 각종 반도체 칩을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생산할 만큼 공학적인 깊이와 전문성을 구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는 이처럼 자체 반도체 기술을 강화하면서 점차 외주를 준 사업을 되찾으려는 애플의 행보가 일으킬 지각변동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애플이 이번 M1 공개와 함께 향후 2년에 걸쳐 맥과 맥북 등 맥 컴퓨터에 들어가는 애플 실리콘을 인텔 기반이 아닌 경쟁사인 ARM 기반으로 설계한다는 방침을 밝힘에 따라 그간 인텔과 AMD가 장악하고 있던 PC 칩 시장에 격변이 예상된다.

현재 CPU 기술은 인텔과 AMD가 활용하고 있는 'x86 아키텍처'가 주를 이루고 있다. 반면 M1은 x86 아키텍처에 유일한 대항마로 꼽히는 ARM의 기술에 애플의 설계 능력을 더해 완성됐다.

이제껏 PC 프로세서 시장에서 ARM의 영향력은 적었다. 라이선스만 구입하면 입맛대로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저전력, 긴 배터리 수명, 얇은 디자인 등 다양한 강점을 갖췄지만 ARM 프로세서는 PC가 아닌 모바일용에만 최적화돼 있다는 평가를 받아오면서다.

다만 최근 PC 프로세서 시장까지 포트폴리오를 확대한 퀄컴에 이어 애플마저 애플 실리콘의 ARM 기반 설계 프로세서 출시를 공식화하며 향후 인텔이 주름잡아왔던 PC 프로세서 시장이 흔들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애플이라는 고객사를 놓친 인텔의 직접적인 타격도 상당하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인텔이 맥 컴퓨터에 대한 칩셋 공급을 중단함에 따라 연간 매출액의 2∼4%에 해당하는 약 2조4000억원(20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입을 전망이다. 반면 애플은 '탈(脫) 인텔'을 통해 연간 8조4000억원의 매출을 더 거둬들일 것으로 보고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도 애플이 설계한 애플 실리콘의 위탁 생산 업체로 TSMC를 낙점하면서, 업계 1·2위인 TSMC와 삼성전자 사이의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 구도에서도 삼성전자에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향후 애플의 공급업체 장악력도 막강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애플을 중심으로 반도체 부품 생산업체들의 수직 계열화 경향이 더욱 강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로 2017년 애플이 자체 영상처리장치(GPU) 생산에 나서자 그간 애플에 GPU를 납품해왔던 영국 이매지네이션 테크놀로지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사모펀드에 매각됐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