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임기 두 달 남기고 '분풀이 인사'…국방장관 전격 해임에 안보공백 우려

입력 2020-11-10 17:17
수정 2020-12-10 00:32
대선 불복을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오른쪽)을 경질하면서 워싱턴 정가에 파장이 일고 있다. 임기를 두 달여 남겨놓은 레임덕(집권 말기의 지도력 공백) 상황에서 이례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해서다. 외교·안보의 안정성이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윗을 통해 “매우 존경받는 크리스토퍼 밀러 대테러센터장이 국방장관 대행을 맡게 됐다”며 “효력은 즉각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어 “에스퍼는 해임됐다. 그의 공직에 감사하고 싶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눈엣가시로 여겨왔던 에스퍼 장관을 쳐낸 것은 남은 기간 자신의 권한을 최대한 휘두를 것이란 관측에 힘을 실어주는 행태라는 분석이다. 트럼프는 지난 6일 국제개발처(USAID) 2인자인 보니 글릭 부처장을 해임해 비충성파 숙청에 나섰다는 뒷말을 낳았다.

밀러 센터장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서 복무한 테러 문제 전문가이지만 국방장관을 맡을 중량감은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트럼프가 이란 등을 겨냥해 군사 작전을 감행해도 저지할 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밀러는 상원 인준을 받기도 힘들다. 새로운 상원 구성을 앞둔 시기여서 인준 청문회 개최 가능성이 거의 없어서다. 팀 케인 상원의원(민주당)은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임기 말기에 국방장관을 내친 것은 국가안보의 안정성만 해칠 뿐”이라고 비판했다.

에스퍼 전 장관은 ‘예스퍼(Yes-per)’로 불릴 정도로 충성스러웠지만 지난 6월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군(軍)을 동원하라는 트럼프에 항명한 뒤 서로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에스퍼는 기자회견에서 “군대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밀리터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국방부 수장으로서 트럼프와의 싸움을 선택했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글릭 부처장과 에스퍼 장관의 뒤를 이어 누가 또 해임될지도 관심이다.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과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우선 거론된다. 레이 국장은 대선 기간 조 바이든 당선인의 아들 비리 의혹 수사를 거부했다. 우편투표와 관련해서도 “선거 사기가 확실하지 않다”고 의회에서 증언했다. 해스펠 국장은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간 내통 의혹인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 트럼프에 유리한 문건의 기밀 해제에 반대한 적이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위험을 경고해온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과 데비 벅스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조정관, 로버트 레드필드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도 오르내리고 있다.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권력 누수를 막고 대선 불복 행보를 이어가기 위해 소송전과 함께 인사권을 적극 휘두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