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필립 힐데브란트 블랙록 부회장, "ESG 인덱스에 포함되느냐가 향후 기업 가치 좌우할 것"

입력 2020-11-10 10:12
수정 2020-11-10 10:14
≪이 기사는 11월10일(10:11)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투자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것이 그 나라의 투자 매력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ESG 관련 ETF(상장지수펀드)인덱스에 포함되는지가 향후 기업 가치를 좌우할 것입니다."

필립 힐데브란트 블랙락 부회장(사진)은 9일 세계경제연구원과 KB금융그룹이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연 국제 컨퍼런스에서 '세션2: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의 뉴 트렌드와 공적 기금의 역할' 기조연설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블랙록은 전체 운용자산(AUM) 규모가 7조 3000억 달러(약 8200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다. 힐데브란트 부회장은 전 스위스 중앙은행 총재 출신으로 2012년부터 블랙록에 몸 담고 있다.

힐데브란트 부회장은 국가 및 기업 차원에서 ESG 트렌드를 얼마나 빠르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는지가 글로벌 자본시장에서의 승자가 되는데 핵심 조건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향후 자본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선 ESG요소를 접목한 ETF에 쓰이는 인덱스의 구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거대한 패시브 자금의 흐름 변화가 세계 경제의 지형도를 바꿔놓을 것이란 것이 그의 지적이다.

그의 기조연설은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과의 인터뷰 형식으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블랙록은 운용 자산 규모가 8조 달러를 바라보는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다. 블랙록이 어떻게 ESG를 투자에 적용 중인지 설명해달라.

"ESG 개념은 지난 20년간 금융시장에 존재했다. 하지만 과거엔 그저 틈새 시장, 특정한 취향의 투자자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관철시키기 위해 하는 투자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난 몇년 간 ESG에서 커다란 변화들이 나타났다. ESG와 실적 개선은 양립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현재 금융계, 학계에 따르면 이 두 가지는 양립 가능하다. 최근 몇 년간의 양자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지속가능성이라는 요소를 포트폴리오에 반영할 경우 기업의 실적이 개선된다는 점이 나타났다. 즉 ESG가치와 투자실적 개선이 이제 상충되는 가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는 지속가능한지 여부가 투자 리스크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ESG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리스크 조정 기준으론 실적이 악화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명목 실적 조차 그렇다. 이는 여러분의 가치와 신념이 어떻든지간에 실적 개선을 위해서라도 ESG요소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뜻이다.

이 같은 인식 변화와 함께 블랙록도 변화하고 있다. ESG원칙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를 고객이 맡긴 자산의 운용에도 반영하고 있다.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지난 1월 연례 서한에서 ESG 요인을 자산 운용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블랙록은 대고객 관계, 내부 투자 프로세스, 주주로서의 역할 등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있다."


▷래리 핑크 CEO의 주주서한을 감명 깊게 읽었다. 이런 노선 전환이 실제 투자 현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CEO의 비전과 그것이 실현되는 것은 다른 맥락이 아닌가.

"첫째, ESG요소가 모든 액티브 상품에 고려돼야 함을 의미한다. 적어도 올해 내 이르면 몇 주안에 블랙록의 액티브 펀드 매니저들은 모두 투자 전반에 ESG요소를 도입해야 한다. 이는 이들의 포트폴리오 구성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블랙록의 자체 펀드관리 시스템인 '알라딘'에 ESG요소가 적용된다.

둘째, 블랙록은 고객들에게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둔 ETF를 제공할 것이다. 고객이 자신이 원하는 성향의 ESG인덱스를 고를 수 있을 정도로 그 폭이 넓을 것이다. 알파(초과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에도 ESG요소를 도입하고 있다. 사모투자 시장도 마찬가지다.

셋째, 세계 최대의 대주주인만큼 의결권 행사 방식에도 변화를 줄 것이다. 기후 변화 등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것이다. ESG 가운데 S(사회)의 문제에도 관심이 크다."


▷지금까지는 ESG요소 가운데 E(환경)에 주로 초점이 맞춰졌고, 방금 S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E와 S외에 G(거버넌스)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ESG시대 국가와 기업 차원의 거버넌스에 대한 생각을 말해달라.

"지배구조 요소는 과거에도 이미 투자에 있어 중시되던 요소다. 지배구조 리스크를 관리하는 기업, 고위 경영진에서 다양성이 확보된 기업이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낼 수 있는 결론이다.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지배구조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 코로나 방역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국가와 아닌 국가간의 차이가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다. 각 국가의 방역 체계의 차이만해도 국가 차원의 거버넌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블랙록은 이미 한국 기업에 상당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블랙록은 삼성전자, 신한금융지주, 네이버 등 국내 주요 기업의 5% 이상 대주주다)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에 비교적 성공한 국가와 아닌 국가들의 사례를 보고, 그리고 그 점을 고려해 블랙록이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한국에 대한 가중치를 높이는 식의 재조정 가능성도 있겠나.

"블랙록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를 매력적인 투자처라 생각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 뿐 아니라 한국의 공적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기업들의 ESG공시 의무 강화 등을 강조하는 등 주요 기관들이 ESG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고무적으로 다가온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요 기관들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있고, 이 원칙에선 ESG요소가 중시된다. 이런 행보들이 전 세계적인 ESG투자 흐름과 맞물려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 기업들이 ESG관점에서 우수한 기업들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고, 투자 환경도 더욱 좋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블랙록의 포트폴리오 실적이나 유입 자본 현황으로 볼 때 우리는 지속가능성이 있는 인덱스가 많은 자본을 끌어당기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규모는 지금도 우리 예상치를 넘어서고 있다. 블랙록이 만든 지속가능성 관련 ETF의 94%가 기존 ETF상품보다 더 높은 성과를 거뒀다. 비용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는데, 블랙록은 이런 ETF인덱스의 비용 절감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이 국가 차원에서 ESG요소를 더 고려할 수록 더 많은 기업과 한국내 투자자산이 글로벌 ESG 인덱스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 세계적으로 ESG상품 발행액이 늘어날 수록 그 수혜는 한국에 돌아갈 수 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