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여읜 어린이에게까지 거액의 민사소송을 걸었던 일부 보험사의 ‘문제적 관행’에 제동이 걸린다.
9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보험사의 ‘구상금 청구 소송’ 남용을 막기 위해 내년 상반기부터 내부통제 장치를 강화하기로 했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보험사는 소비자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 전 사내 소송관리위원회의 사전 심의, 임원 이상의 최종 결재, 준법감시인의 동의 등을 받아야 한다. 이 대상에는 채무부존재 확인소송, 지급보험금 반환청구소송, 보험계약 무효 확인소송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보험사가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우선 지급한 뒤 가해자에게서 돌려받는 등의 구상금 소송은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앞으로는 미성년자, 기초생활수급권자 등 취약계층을 상대로 했거나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에 대한 구상금 소송은 소송관리위원회 심의 등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보험사는 소송관리위원회 개최 실적과 승인·불승인 비율 등을 반기마다 홈페이지에 공시해야 한다.
금융당국의 이같은 결정은 손보사들이 유가족에 뒤늦게 구상권을 청구해 논란을 빚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특히 올 들어 H손해보험이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초등학생에게, D손해보험은 사고 후 12년이 지난 시점에서 유가족에게 구상권을 행사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H손보의 사례는 올해 초에 알려지며 주목을 받았다. 2014년 당시 초등학생 A군의 아버지가 고통사고로 사망하자 상대 보험사였던 H손보는 A군에게 6000만원을 지급했다. A군 어머니에게도 9000만원이 지급될 예정이었지만 베트남인인 어머니는 귀국해 연락이 끊긴 상태여서 보험금은 H손보가 보관하고 있었다. A군은 사실상 고아였던 셈.
그러던 중 사고 후 6년이 지난 올해 초 H손보는 "상대차량 동승자 치료비와 합의금 5300만원을 H손보가 지급했으니 이중 절반을 내놓으라"며 A군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A군의 어머니가 연락이 끊긴 상태이다보니 A군에 전액 청구한 것.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고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에까지 '초등학생한테 구상권 청구가 말이 되느냐'는 청원이 올라왔다. 보험업계는 “법적으로 정당한 절차”라고 항변했지만, 금융당국은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H손보 대표가 사과하고 청구를 취소하며 일단락 됐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