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울산·경남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희망고문’을 끝내겠다.” 최근 부산을 찾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이다. 이 발언이 나온 이유가 내년 4월 치러질 부산시장 보궐선거 때문임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가덕도 신공항 적정성 조사를 위한 용역비 예산 반영을 놓고 민주당과 국토교통부가 갈등하는 볼썽사나운 장면이 펼쳐졌다. 이 대표는 부산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가덕도 신공항 조사 용역비를 예산에 반영하자는 제안이 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국토부가 김해 신공항 타당성 검증이 끝나지 않았다며 내년 예산에서 용역비를 전액 삭감한 것으로 확인되자, 여당 의원들이 집단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김태년 원내대표가 “국토부 2차관 들어오라고 해”라며 소리치는 모습까지 목격됐다. 기업인도, 공무원도 맘에 안 들면 즉각 불러들이는 여당의 오만이 하늘을 찌른다. 결국 여당 뜻대로 가덕도 신공항 용역 예산은 ‘추가 증액’으로 정리됐다. 여당이 선거에 혈안이 돼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끝날 것으로 보면 오산이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조차 “김해 신공항이 부적절하다는 결론이 나오기 전에 특정지역을 정해 적정성을 검토하는 것은 법적 절차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설령 김해 신공항이 부적절하다는 결론이 나와도 그렇다. 수요 조사 등 모든 절차가 원점에서 시작돼야지 가덕도가 바로 후보지가 될 수 없다. 여당은 지금 눈앞의 선거 때문에 국정의 기본원칙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은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 간 극한의 지역 갈등을 빚은 사업이다. 2016년 박근혜 정부는 기존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김해 신공항을 대안으로 결론 내린 바 있다. 하지만 2018년 민주당 소속 부산시장이 가덕도 신공항을 다시 끄집어냈다. 그러자 문재인 대통령은 재검증을 약속했고, 총리실 검증위원회가 재검토에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여당이 원하는 대로 가덕도 신공항을 재검토한다고 치자. 누가 그 절차적 정당성을 인정하겠는가. 국정시스템보다 선거가 우선이 되면 대형 국책사업은 만신창이가 되고 말 것이다.
월성 1호기의 경우 정부·여당이 탈원전 로드맵에 따라 조기 폐쇄 결론을 내려놓고 경제성 평가를 꿰맞추는 식으로 가면서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를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가덕도 신공항도 유사한 길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