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삼각동맹의 완전한 복원을 요구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직·간접적 압박이 거세질 겁니다.”
야당 내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꼽히는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은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의 외교노선이 동북아시아 주변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조 의원은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에 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당선자의 기본적인 외교 노선은 ‘동맹 가치’와 ‘다자(多者) 외교’”라며 “대중(對中) 견제와 동북아 안보의 기본틀인 한·미·일 군사동맹에 다시 무게중심을 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따른 한·일 갈등, 이에 따른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사태 등으로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못하고 있는 한·미·일 군사공조를 다시 강화하는 데 바이든 행정부가 공을 들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조 의원은 “기본적으로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을 약화시키는 걸로 간주한다”며 “특히 지소미아 문제를 대일(對日)협상의 방편으로 삼는 것은 대미외교에서 악수를 두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은 대미 외교의 함수가 될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가 한·일 갈등의 중재자로 본격적으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과거사 문제에서 명분상 우위에 있는 한국이 보다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조 의원은 “바이든 당선자와 민주당은 최소한 과거사와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는 심정적으로 명백히 한국 편”이라며 “일본에 앞서 선제적으로 미국에게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고 한·일 관계 악화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기후 변화’를 바이든 시대에 달라질 한·미 관계의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그는 “바이든 캠프에는 기후변화가 인류 존재론적 위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당선 즉시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하겠다고 한 만큼 미국이 앞장서 파리 협약을 이행하라고 주변 국가들을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개발도상국에 지급하는 석탄 화력 발전 수출 보조금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봤다.
미·중 무역 분쟁 속에서 ‘화웨이 때리기’는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조 의원은 “현재 화웨이 문제는 무역 분쟁을 넘어선 첨단 기술 패권 경쟁”이라며 “미국은 첨단기술 분야에 있어서는 중국에 주도권을 절대 내어주지 않겠다는 심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에게도 미·중 갈등 속에 미국을 선택을 하라는 압박이 거세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 의원은 외교부에서 북미국장과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거쳐 박근혜 정부 외교부 1차관을 역임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미래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다음은 조 의원과 일문일답 내용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내용을 손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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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20~30년 동안 해외 주둔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말해왔다. 해외 주둔 미군 철수는 그의 신념이다. 바이든이 되면 주한미군 감축 문제에 있어서는 안심이다. 바이든은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만큼 대폭 감축은 없을 것이다.”
▷대북 정책도 많이 바뀔 것이라고 보나.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바이든은 절대로 맹목적인 ‘톱다운’식 외교는 안하겠다고 공언했다. 비핵화 진전에 대한 확실한 약속 없이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에서 그 차이는 매우 클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면 대북제재 압박에서 가장 중요한 중국과 러시아가 수위 조절에 나선다. 그런데 바이든은 대북(對北) 압박을 상당히 강화하려고 들 것이다. 흐트러진 압박 전선을 다시 모으고 강화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
▷경제 분야는 어떻게 바뀔까.
“기후변화 관련 분야는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바이든은 민주당 정강 정책에서 파리기후협정에 즉시 복귀하겠다고 했다.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 순 ‘제로(0)’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정연설에서 탄소중립을 공약했지만 아직까지 각론이 없다. 탈(脫)원전을 손대지 않고 2050년 탄소중립을 말하는 건 공허한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가 과연 한·미 경제 관계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나.
“바이든 캠프 상당수 인사는 우리 인류가 이산화탄소 배출 때문에 존재론적인 위기를 맞이했다고 본다. 파리기후협정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설득해서 만들었다. 바이든은 파리기후협정에 즉각 복귀하는 것은 물론 앞장서 이를 이행하라고 다른 국가들을 압박할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말기에 우리 정부에 석탄화력발전소 보조금 중단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한국 건설업체가 가서 발전소를 짓더라도 최소한 정부 차원의 수출을 지원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를 없애는 게 목표긴 하지만 아직까진 남아있다. ”
▷미·중 관계는 어떻게 달라질 것으로 보나.
“방법이 달라질 것이다. 트럼프는 일방통행식 외교를 선호했다. 바이든은 동맹국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쌍방소통을 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 때문에 양국 사이에서 우리의 외교 역량이 중요하다. 바이든은 대중(對中) 외교의 목표를 정하고 각론을 정한 다음에는 한국에도 구체적인 요구를 할 것이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화웨이 같이 하나의 기업을 때리는 경우는 지속될까.
“그렇다. 하지만 이유는 다르다. 미·중 무역분쟁은 타협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하지만 첨단기술 분야는 얘기가 다르다. 미국의 화웨이 때리기는 첨단기술 분야에서 기술 주도권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화웨이가 이윤을 남기고 돈을 버는 게 문제가 아니라 기술력을 문제삼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해도 이는 똑같을 것이라고 본다. 삼성과 SK네트웍스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미국에 반기를 들어서는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미국 편으로 확실히 전략을 세웠다고 본다. 다른 기업들도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할 수 있다.”
▷미·중 관계가 냉전 시대의 미·소 관계처럼 장기간의 갈등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보나.
“그렇다고 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 정가에서는 사람이라면 자유를 선호하기 때문에 중국이 언젠가는 개방되고 민주화될 것이라는 굳은 신념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믿던 사람들이 최근 중국에 실망했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이 느리지만 서서히 변화해나가고 있다고 믿지만 10년 이내에 단기적으로 풀릴 갈등은 아니라고 본다.”
▷한·일 관계는 달라질까.
“일본은 대미외교의 함수관계다. 일본은 대미외교를 훨씬 오래했고 훨씬 더 많은 자금을 들인다. 한국도 일본 변수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특히 바이든은 동맹을 중시하고 동맹국 간의 협조와 네트워크도 매우 중시한다. 이 때문에 한·미·일 3각 협력틀을 만들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주요 동맹국인 한·일 양국이 삼각관계의 틀을 약화시키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는 빨리 움직이는 쪽이 유리하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어떻게 해야되나.
“바이든 행정부에 우리 측의 해결방안을 이해시키고 설명해야 한다. 애당초 워싱턴에서 한국과 일본이 같은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가 아니다. 하지만 과거사와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는 민주당은 명백히 한국 편이다. 명분과 원칙에서 한국의 입장이 맞다고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명분을 앞세워 우리 입장을 잘 설명해야 한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등을 협상 방편으로 삼는 것은 악수를 두는 일이다.”
▷일각에서 외교부의 역량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외교부의 역량이 약화됐다기보다는 역할이 약화됐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정책 환경이 어렵지만 이에 대해 다양한 경우의 수를 놓고 고민하는 것이 외교부 수뇌부의 역할이다. 예를 들어 지소미아 문제를 한·일 협상 카드로 쓰자고 결정하기 전에 안보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었어야 했다. 대미외교 역량도 약화되고 있다. 과거에 외교부에서 미국 외교라인이 출세 많이 했다고 그걸 공개적으로 누른다던가 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송영찬/좌동욱/성상훈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