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통령에 당선된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사진·56)은 ‘오바마 닮은꼴’로 통한다. 이민 2세대이자 법조인 출신이고, 중도파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하는 비교적 젊은 정치인이라는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비슷해서다.
흑인·아시아계 등 유색인종과 여성층, 중도층으로부터 지지를 받아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을 보완한다는 평가다. 흑인·아시아계 이민자 가정 출신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은 1964년 자메이카 출신 경제학자 아버지와 인도 출신 생물학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자랐다. 해리스 당선인이 흑인이자 아시아계로 통하는 이유다.
해리스 당선인의 아버지인 도널드 해리스는 스탠퍼드대 경제학부에서 흑인 최초로 교수직 정년을 보장받은 포스트 케인지언파 학자다. 해리스 당선인의 어머니 시야말라 고팔란은 캐나다 맥길대 교수를 지낸 유방암 연구자다.
‘엘리트’ 부모를 뒀지만 유복하게 자라진 않았다. 해리스 당선인이 7살이 되던 해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당시 저소득층 흑인들이 주로 사는 지역에 살면서 침례교 교회와 힌두교당을 모두 다녔다.
해리스 당선인은 전통적 흑인 명문으로 꼽히는 워싱턴 D.C 하워드대를 졸업했다. 캘리포니아대 헤이스팅스로스쿨을 거쳐 검사로 법조계에 입문했다. 검사 출신 '공격수'…청문회 스타 전력
해리스 당선인은 2004년 샌프란시스코 검사장을 지냈고, 2011년엔 흑인·여성 최초로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에 선출됐다. 법무장관 시절 오바마 전 대통령과도 친분을 쌓았다.
주법무장관 시절엔 ‘오픈저스티스’라는 형사판결 공개 데이터베이스를 최초로 구축해 시민들이 형사판결 자료를 열람할 수 있게 했다. 2014년 유대계 기업변호사인 더글라스 엠호프와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 자녀는 없다.
2017년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후엔 강한 공격수 기질을 보였다. 2018년 9월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인준 청문회에서 연신 날카로운 질문으로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해리스 당선인의 민주당 부통령 후보 지명 소식을 듣고 “해리스 의원은 캐버노를 아주 끔찍하게 대했다”고 했을 정도다. 민주당 경선선 바이든 지목해 '격론'
작년 1월 민주당 경선에 뛰어든 이후에도 격렬한 토론으로 인지도롤 올렸다. 작년 6월 민주당 경선후보자 1차 TV토론 때엔 당시 경쟁자였던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을 직접 지목해 그를 매섭게 몰아붙였다.
해리스 당선인은 당시 흑인과 백인 학생이 같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군간 버스를 운영한 ‘버싱 정책’을 바이든 당선인이 반대했다며 “잘못했음을 인정하는가”라며 맹공을 펼쳤다.
이 토론으로 경선 초반 인기를 얻어 한때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과 대선 후보 2위권을 경합했다. 그러나 이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후발 주자로 내려앉아 작년 12월 경선에서 하차했다. 지난 8월엔 바이든 후보의 대선 ‘러닝메이트’로 지명됐다. 법인세 인상 '강경파'…고소득층 추가세율 의견도해리스 당선인은 민주당 안에선 비교적 중도파로 분류된다. 의료개혁에 대해선 민간 보험사에 대해 제한적 역할을 유지하고, 중산층엔 세금을 올리지 않으면서 공공보험제도를 유지하는 안을 지지한다. 뉴욕타임스는 앞서 “해리스 상원의원은 사형 반대 등 전형적인 민주당 이슈 외에 여러 문제에 대해 진보주의자들과 뜻을 같이 하지 않는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다만 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 인상을 놓고는 바이든 당선인보다 강경한 입장이다. 민주당 경선 당시 법인세를 기존 21%에서 35%로 급격히 올리고, 개인소득세 최소세율은 기존 37%에서 39.6%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간 10만달러 이상을 버는 고소득층 가구에 추가 세율을 적용하자는 안도 내놨다.
해리스 당선인은 그간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해왔다. 작년엔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사진이나 찍었을 뿐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며 “북한에 당했다”고 주장했다. 한미 공동군사훈련에 대해선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최고령 대통령의 부통령…'포스트 오바마' 될까
일각에선 해리스 당선인이 민주당의 차기 대선 주자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첫 임기를 마치면 82세 나이가 돼 재선에서 나서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바이든 당선인은 올해 만 77세로 내년 1월20일 취임 시 만 78세가 돼 미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 기록을 내게 된다.
해리스 당선인은 부통령직을 맡아 대선 도전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평이다. 해리스 당선인이 이번 선거로 미국 역사상 최초 흑인·아시아·여성 부통령 기록을 썼다는 점도 ‘후광’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해리스 당선인은 7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과 함께 연 당선 기자회견에서도 미 사상 선출공무직 최고위에 올라간 여자라는 점과 이민 가정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연단에 오를 때는 흑인 인권운동에 힘써온 미국 여성 팝스타 비욘세의 노래와 함께 등장했다.
해리스 당선인은 "이 연단에서 흑인, 동양계, 라틴계 여성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한 노력을 떠올린다"며 “내가 첫 여성 부통령이 됐지만, 자리에 오르는 마지막 여성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내 어머니는 19세 나이에 인도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을 때 이 순간을 상상하지 못했겠지만, 이런 순간이 가능한 미국을 믿었다”며 “인종차별을 배격하고 기후변화에 맞서 새 미국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AP통신은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가 단임하기로 결정할 경우 해리스 당선인이 차기 대선 후보군 선두주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