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역사상 가장 치열한 대결 양상을 보였던 이번 선거에서 막판 대역전승을 거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46대 미국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됐다.
역대 최연소인 29세에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돼 최연소 대통령을 꿈꾸던 그는 78세에 역대 최고령으로 꿈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3수 끝에 미국 대통령을 예약한 그는 정치 경력이 50년 가까이 되는 베테랑이다. 워싱턴 정계 최고 이력과 풍부한 국정 경험, 대중적 인지도가 강점으로 꼽힌다.말 더듬고 왜소한 체격으로 놀림 받던 학창 시절
1942년 펜실베이니아주 스큰랜턴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바이든은 어린 시절 말을 더듬고 왜소한 체격으로 학교에서 자주 놀림을 당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평생 삶을 비관한 삼촌처럼 되고 싶지 않아 조약돌을 입에 물고 시를 통째로 암송하는 등 부단한 노력으로 말 더듬는 것을 고치는 데 성공한다.
델라웨어대학에 들어간 그는 '평등·공정·정의를 지키고, 우리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 연설(1961년)을 듣고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자신처럼 부유하지도 않고 연줄도 없는 사람이 스스로 힘으로 워싱턴에 입성하려면 변호사가 되는 방법에 없다는 걸 깨닫고 시러큐스 로스쿨에 들어간다.
로스쿨을 졸업한 뒤 대형로펌 '프리켓, 워드 버트&샌더스'에 입사했다가 안전사고로 심하게 화상을 입은 용접공을 상대로 대기업 편에서 변론을 하는 상사의 재판을 보고 퇴사를 결심한다.
바이든은 당시를 회상하며 "제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람들의 편에 서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무언가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아니라 목표한 바를 향해 걸어가는 느낌이 들었다"고 언급했다. 소수자와 노동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한 것이 이때다. 최연소 상원의원 당선…최고령 대통령 타이틀까지
이후 국선 변호사로 활동하던 그는 뉴캐슬카운티 의회 선거를 거쳐 1972년 케일럽 보그스라는 정치 거물을 대역전극으로 꺾고 델라어웨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는 기적을 만든다. 20대 신예가 26년 간 주 전체에서 한 번도 진 적 없는 노정치인을 꺾은 것이다.
이어 내리 6선에 성공하며 36년간 상원의원을 지냈고 민주당 대표적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는 법사위원장, 외교위원장 등을 지내며 공화당 의원들과도 협치와 상생정치의 모습을 보였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에는 8년 동안 부통령직을 맡았고 이같은 경험과 화려한 경력으로 줄곧 대선 주자로 거론됐다. 2008년 경선에선 오바마에게 패했지만 러닝메이트로 지명돼 본선을 함께 치렀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2016년 대선 역시 출마를 검토했지만 나서지는 않았다.
40대에 대권 도전 의사를 밝혔던 바이든은 이제 30여년의 세월을 거쳐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 타이틀을 얻게 됐다. '애절한 가족사' 교통사고로 첫 부인과 사별…아들도 숨져정치인으로 성공한 바이든의 이면에는 애절한 가족사(史)도 있다. 그는 1972년 11월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지 한 달 뒤인 그해 12월 교통사고로 아내와 13개월된 딸을 잃었다. 두 아들은 다쳐 입원했다.
그는 충격으로 의원직 사퇴까지 고려했지만 주변의 만류로 위기를 넘기고 이듬해 아들들의 병실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현재 부인인 질 바이든과 1977년 재혼하기 전까지 혼자 두 아들을 돌봤다.
2016년 대선 도전을 고려하던 2015년 5월에는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이던 장남 보 바이든이 뇌암으로 사망하는 불운도 겪었다. 바이든은 이런 고통을 이겨내고 공감 능력과 친화력을 앞세워 통합과 치유의 메시지를 보여왔으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과 대조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정치적 역경과 재기
화려한 경력을 가졌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1988년 대권 출사표를 던졌지만 영국 정치인 닉 케닉 연설 표절, 로스쿨 보고서 표절 시비 등에 휘말리면서 정치적 좌절을 겪기도 했다. 결국 후보를 중도사퇴한다. 이후 대법관 임명 청문회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논란이 사그라들던 찰나 뇌동맥류로 쓰러지면서 최대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2차례 위험한 수술을 거쳐 정치 일선에 복귀해 여성폭력방지법이 통과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코소보 내전 해결을 주도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며 재기에 성공한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신의 러닝메이트였던 바이든을 "마음 속 깊이 중산층의 가치가 뿌리내린 외교정책 전문가이자 독재자들에 맞서고 미국의 경찰과 소방관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나의 파트너"라고 높이 평가했다.
바이든은 특정 이념보다 당대의 여론과 현실에 충실히 따르는 중도 실용주의에 가깝다는 평가다. 1990년대 걸프전에 반대했으나 2000년대 9·11 테러 뒤 이라크전엔 찬성한 식이다. 1970년대 인종 통합 정책에 반대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됐으나 2010년대 동성 간 결혼은 오바마 대통령보다 먼저 지지했다. 또 부통령 시절 시진핑 주석과 단독 만찬만 8차례 하며 '최고의 중국통'으로 불렸으나 이번 대선에선 반중(反中)을 내세웠다.
바이든의 대선 도전은 이번이 세 번째다. 1988년엔 연설 표절 의혹으로 사퇴했고, 2008년엔 젊고 카리스마 넘치는 오바마에게 밀렸다. 생애 마지막 도전인 2020년 대선에선 트럼프 정권의 분열과 혼란 속에서 미국인이 갈망한 경륜과 안정, 친화력 같은 자신의 모든 자산을 쏟아부어 자신의 정치 인생에 화려한 대미를 장식할 것으로 보인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