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시진핑도 기업 혁신 적극 지원하는데…

입력 2020-11-06 17:30
수정 2020-11-07 00:07
베이징 특파원으로 부임한 지 1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차량 호출서비스 디디추싱을 타고 가족과 함께 외출하던 중이었다. 아내가 최신 스마트폰을 차에 두고 내렸다. 차는 이미 떠났고 아내는 식당에 들어가서야 이를 알았다. 베이징 생활에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모두 스마트폰에 저장해뒀던 아내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한국도 아니고 중국에서 잃어버린 스마트폰을 되찾을 것이란 기대는 거의 하지 않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식당 주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택시라면 몰라도 디디추싱은 다를 것”이라고 했다.

디디추싱 앱에서 번호를 찾아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30분 뒤 기사는 “찾았으니 안심하라”는 ‘콜 백’을 해줬다. 휴대폰을 가져온 그는 식당까지의 주행요금 외에 다른 사례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한국보다 시민의식이 훨씬 낮다고 생각했던 중국에서 예상하지 못한 경험이었다.

베이징 생활을 오래한 지인들은 “분실물만 돌려주는 게 아니다. 디디추싱이 교통 악습까지 바꾸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디디추싱과 경쟁하면서 택시의 고질적 문제였던 바가지요금이나 승차 거부 등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디디추싱 덕분에 새로운 중국을 경험하면서 촌지 없는 장례문화를 선도한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이 떠올랐다. 기업의 혁신적인 서비스는 시민의식을 바꿔놓기도 한다.

동시에 한국에선 더 이상 혁신 기업도,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도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업계의 표가 아쉬운 정치인들이 법까지 고쳐가며 퇴출시킨 ‘타다’ 사례를 보면서다. 타다도 깨끗하고 안전하며 편리한 서비스로 한국의 택시 시장을 흔들었다. 시민들은 환영했고 택시업계에선 자성의 계기가 됐다는 반응이 많았다.

중국은 그동안 결코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었다. 한국 정부 및 정치권과 마찬가지로 중국 정부 역시 기업인을 ‘소환’ 대상으로 다뤄왔다. 하지만 2015년 택시업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차량 호출을 합법화했다. 정부가 택시업계를 손쉽게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면 1차원적 접근일 수 있다. 체제에 대한 위협을 가장 경계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 공산당이 체제 안정을 위해 택한 길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공급 측 개혁’을 내세우며 혁신기업 육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공산당과 중국 정부는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기업을 망설임 없이 지원한다. 확고한 목적 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규제를 완화하거나 없앤다. 세계 1위 드론업체 DJI, 세계 최고 수준의 얼굴인식 기술을 갖춘 하이크비전 등 한국에선 규제 올가미가 씌워진 분야에서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이 끊임없이 탄생하는 배경이다.

디디추싱의 서비스는 한국의 모범택시 수준이다. 경쟁 관계인 택시의 질이 함께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실직한 청년 100만 명 이상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중국 정부는 시장점유율 90% 이상의 독점을 문제삼지도, “기사를 직원으로 고용하라”는 식의 경영 개입도 하지 않는다.

최근 내려진 앤트그룹에 대한 전격적인 상장 중단 조치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한 현지 기업인은 분석했다. 앤트그룹은 국민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순기능’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소액 대출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금리를 슬금슬금 올렸다. 이로 인해 국민에게 부담을 주게 됐고 결국 공산당의 눈 밖에 났다는 것이다.

미국 대선을 지켜보면서 시 주석과 공산당의 자국 기업 육성 의지는 더욱 굳건해진 것 같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중국 기업을 겨냥한 견제와 제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최근 폐막한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9기 5중전회)에서 “기업의 기술 혁신을 적극 지원해 과학기술 강국 건설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과 대조적으로 한국에선 ‘기업규제 3법’ 등 기업 옥죄기 법안만 쏟아지고 있다. ‘기업이 잘돼야 국민 생활이 안정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한국 정부와 정치권만 애써 외면하고 있다. 중국, 3분기까지 340조 감세…"기업 활력 제고"중국은 적극적 감세와 각종 기업 우대 조치로 경제 활력 제고에 나서고 있다.

중국 국세청에 따르면 올 1~9월 감세 규모는 총 2조924억위안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지난해 감세 조치 연장으로 달성된 부분은 7265억위안,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기업 지원 등 추가 조치에 따른 성과는 1조3659억위안으로 조사됐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3년 집권 이후 경제성장률 하락 추세를 막기 위해 일관되게 감세 정책을 추진해왔다. 지난해에는 증치세(부가가치세)율을 최고 16%에서 13%로 내렸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방역물자 생산설비 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 임직원용 방역물품 구매 비용에 해당하는 법인세 공제 등 관련 조치를 쏟아냈다.

적극적 감세는 효과를 내고 있다. 올 3분기까지 중국의 누적 경제성장률은 0.7%로 주요국 가운데 유일하게 플러스로 전환했다. 전국 민간기업 매출은 같은 기간 3.7% 증가했다.

둥중윈 중항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작년 중국은 감세와 각종 비용 인하를 통해 국내총생산(GDP)이 0.8%포인트 증가하는 효과를 거뒀다”며 “올해는 감세 규모가 더욱 커져 일자리 보전 등에 상당한 효과를 낼 것”이라고 진단했다.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