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대 앞 서교동, 합정동, 동교동, 연남동 일대에는 중소 규모 공연장들이 모여 있다. 그 숫자만 85곳에 이른다. 1990년대 인디 음악의 발원지이자 대중문화 생태계를 이끌어 온 공연장들이다. 이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하나둘씩 문닫고 있다. V홀, 무브홀, BGBD(옛 드럭), 퀸라이브홀, 라이브와이어, KT&G 상상마당, 베짱이홀…. 올해 문을 닫았거나 운영 중단 상태인 홍대 앞 공연장들이다. 연말까지 더 많은 곳이 폐업 신고를 할 예정이다.
이들을 벼랑 끝으로 밀고 있는 게 또 있다. 지난 4일 개관한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다. 서울시가 만든 ‘반값 공연장’이다. 3일 홍대 앞 공연장 운영 관계자들은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 개관을 하루 앞두고 개관 취소를 요구하는 긴급 회담을 열었다. 반값에 공연장 대여
‘서울생활문화센터’는 고(故) 박원순 시장의 작품이다. 일반인들의 예술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 곳곳에 마련하고 있는 공간의 일부다. 이 중 서교점은 지하철2호선 합정역 인근 ‘서교동 역세권 청년주택’ 지하 1~2층에 4423㎡, 약 160석 규모로 지어졌다.
홍대 민간 공연장 관계자들이 서울생활문화센터 개관을 반대한 데는 이유가 있다. 서울시는 개관 전 시설 이용 대상을 일반인들로 한정했다. 일반인들이 대관비 부담 없이 저렴한 비용으로 공연을 무대에 올릴 수 있게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했다. 그러다 개관을 앞두고 돌연 “상업 공연도 올릴 수 있다”는 것으로 태도를 바꿨다. 일반인의 동아리 활동뿐만 아니라 기성 가수와 프로 밴드들도 이 시설을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가격도 싸다. 홍대 인근 공연장의 대관 시세는 주말 기준 240만~260만원 선이다. 무브홀, 브이홀 등 중견급 이상의 공연장은 280만~500만원 선이다.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는 주말 120만~최대 220만원으로 책정돼 있다. 대학 동아리 등은 50% 할인된 가격에 제공한다는 정책도 내걸었다. “공연 사업자 생존권 위협”25년간 공연장을 운영해 온 김천성 롤링홀 대표는 “기존 공연장들이 10분의 1 수준의 가동률로 힘겹게 버티고 있는 상황에 서울시가 170석 규모의 새 공연장을 개관해 싸게 상업 공연장으로 운영하는 것은 기존 업체들에 사업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공연 분야를 코로나19 특별 지원 업종으로 지원해놓고 뒤에서 소상공인과 경쟁해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공연장 관계자들은 이날 서울시에 개관 취소를 공식 요청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생활문화센터 조성은 코로나19 발생 이전부터 설치 계획이 완료돼 있던 것이고 문화센터에 있는 공연장은 ‘서교스퀘어’ 하나에 불과하다”면서 “공공성, 주민자치 성격을 띤 단체 공연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상업적 목적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또 “청년 예술가들에게 저렴하게 연습실과 강의실을 이용하게 하는 것은 생태계 파괴가 아니다”고 말했다.
현재 홍대공연장 연합은 대중음악 공연이 아닌 미술, 연극, 무용 등 다른 장르의 문화예술 전용 공연장으로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에 대해 “공연장 관계자들과 충분한 추후 협의를 거쳐 합의점을 찾아가겠다”고 설명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