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 칼럼] 퇴직연금 둘러싼 동상이몽

입력 2020-11-05 17:01
수정 2020-11-06 00:14
2005년 도입된 퇴직연금이 지난해 말 적립금 221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국민연금 적립금 736조원과 비교해도 30%가 넘는 수준이다. 금융업계, 정부, 정치권의 관심이 커졌다. 덩치는 커졌지만, 수익률은 낮아 제도를 개선할 필요성이 크다는 게 한목소리다. 2019년 퇴직연금 수익률은 2.25%를 기록해 국민연금이 낸 11%와는 차이가 크다.

퇴직연금이 제대로 수익을 못 내는 원인에 대한 진단은 모두 같다. 주식에 투자해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실적배당형’보다 정기예금 중심의 ‘원리금보장형’을 가입자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해 말 원리금보장형은 대기성자금을 포함해 89.6%나 된다. 주식 투자 늘리자는 업계·여당퇴직연금 가입자인 근로자들이 수익성보다 ‘안정성’을 지나치게 중시한 탓이라고 지적하는 금융업계는 대안으로 ‘디폴트옵션’을 제시한다. 근로자들이 퇴직연금을 굴릴 금융상품을 제대로 고르지 못하면 자동으로 ‘실적배당형’이 지정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연금 전문가들도 지지하고 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에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는 법안을 발의한 배경이다.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수익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취지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가입자들이 직접 선택하지 않으면 기본 선택지로 실적배당형이 정해지도록 한다는 건 어딘가 좀 찜찜하게 들린다. 투자 주체의 선택보다 금융사의 기본 옵션이 더 중요해질 수 있어서다.

정부가 지난달 3일 들고나온 ‘국민참여형 뉴딜펀드’도 퇴직연금을 염두에 둔다. 20조원 규모의 뉴딜펀드에 퇴직연금을 투입해 수익성과 안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다는 얘기다. 문제는 손실이 발생했을 때다.

다른 한편,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내걸고 이번엔 ‘기금형’ 퇴직연금제를 도입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한정애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다. 노사 동수로 구성되는 ‘수탁법인(기금)’을 만들어 퇴직연금 자금을 직접 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지금은 은행, 증권사 등 금융회사만 가입자와의 계약에 따라 자금을 운용할 수 있다. 자율적인 자금 운용이 가능해지는 만큼 수익률 높은 상품에 더 투자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가입자들은 안정성 더 중시일단 금융업계는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안정성을 중시하는 가입자 개개인보다 수탁법인은 수익성을 더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업계의 이런 입장에 반해 경제단체의 하나인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기금형 퇴직연금제 도입에 지난 2일 반대 의견을 내놔 눈길을 끈다. 기금 운용에까지 노조가 관여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데다 퇴직연금에 손실이 날 경우 궁극적으로 사업주가 최종 책임을 져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자면 ‘실적배당형’의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데 금융업계와 정치권 모두 한목소리를 내지만 ‘손실 위험’에 대한 언급은 없다. 실제로 주식시장 상황에 따라 실적배당형은 손실이 발생하기도 한다. 실적배당형 수익률은 2019년 6.38%였지만 바로 1년 전인 2018년엔 -3.82%였다. 최근 라임·옵티머스 사태에서 불거진 자본시장의 투명성 문제도 가입자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가입자들의 무지나 지나친 안정 추구 성향을 탓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금융 소비자인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투자를 꺼리는 요인이 뭔지 먼저 따져볼 일이다.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