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좀으로 독성 문제 없이 세포 속에서 작용할 수 있는 바이오 신약을 내놓겠습니다. 내년 상반기 다국적 제약사에 전임상 단계 후보물질(파이프라인)의 기술수출 2건을 체결하겠습니다.”
지난달 22일 만난 최철희 일리아스바이오로직스 대표는 “엑소좀 안에 고분자 약물을 탑재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일리아스바이오로직스는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인 최 대표가 2015년 세운 엑소좀 신약 개발 기업이다. 올 9월 24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달엔 키움증권과 대신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하고 기업공개(IPO) 준비에 들어갔다. "전임상서도 수억 달러 규모 계약 가능"최 대표는 의대를 졸업하고 신경과 전문의로 재직하다가 30대 들어 기초학문으로 뛰어든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바이오 기술 개발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2010년대 중반 당뇨 환자들의 족부 질환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했다. 당뇨 환자들은 혈당 조절이 어려워지면서 손·발끝의 신경이 무뎌지게 된다. 무뎌진 신경 때문에 손·발끝에 상처를 입어도 이를 자각하기 어렵다. 이 상처는 혈관 합병증으로 인해 궤양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최 대표는 손과 발 등 말초 조직 속 혈류량을 측정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해 한 중견 의료기기 기업에 기술이전했다. 그는 “당뇨 환자 100여명을 대상으로 혈류량을 측정하는 등 임상 적용을 위한 연구를 계속했다”며 “임상비용 부담으로 기술을 이전받은 업체에선 상업화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상용화에 실패하자 최 대표는 직접 상업화를 추진하기 위해 엑소좀 기반 바이오 기업을 차렸다. 엑소좀은 세포막에서 떨어져 나온 분비물의 일종이다. 엑소좀은 아직까지 치료제가 나오지 않은 미개척 분야다. 하지만 전임상 단계서부터 수억 달러 규모 기술이전에 성공한 기업이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다케다는 영국 엑소좀 개발 기업인 에복스테라퓨틱스와 전임상 단계의 5개 신약후보물질을 공동 개발하는 조건으로 8억82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엑소좀이 이렇게 높은 가치를 받는 이유를 알 필요가 있다. 엑소좀은 30여년전 만해도 세포막에서 떨어져 나온 30~150나노미터(㎚) 크기의 찌꺼기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엑소좀이 단백질 지질 리보핵산(RNA) 등을 함유해 세포 간 신호전달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엑소좀에 대한 학계의 인식이 달라졌다. 최 대표는 “엑소좀은 신경계, 내분기계에 이어 ‘제 3의 신호전달 경로’로 불리고 있다”며 “기존 항체치료제가 세포막을 투과하지 못해 세포 밖에서 작용했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차세대 신약 물질로 손꼽힌다”고 설명했다.
안전성, 공격력 모두 갖춘 엑소좀세포 내로 약물을 전달할 수 있는 물질이 엑소좀만 있는 건 아니다. 유전 정보를 세포 안으로 전달할 때는 바이러스가 쓰일 수도 있다. 엑소좀과 유사한 크기의 나노입자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이를 약물전달 물질로 활용하기도 한다. 인지질로 약물을 둘러싸 만드는 리포좀이 대표적인 나노입자다. 하지만 체내에 존재하지 않는 바이러스나 리포좀을 이용하다 보니 생체적합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최 대표는 “엑소좀은 생체적합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체내엔 수백 종류의 세포에서 유래된 엑소좀이 존재한다. 이들 일부는 주변 세포 안으로 들어가거나 혈류를 통해 이동한다. 하지만 이 엑소좀들이 체내에서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최 대표는 “헌혈로 받는 혈액에도 엑소좀이 다량 있지만 체내에서 독성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며 “전임상에서 독성 제어가 가능하다는 것만 확인되면 효능 시험에 집중할 수 있는 게 엑소좀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한계도 있다. 치료제로 판매되기 위해선 일정 수준의 품질이 보증돼야한다. 하지만 같은 세포에서 나온 엑소좀이더라도 해당 세포의 상태에 따라서 엑소좀 속 생체활성물질의 양이 제각각이다. 최 대표는 “과거엔 엑소좀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세포가 만들어 낸 엑소좀의 수가 품질제어(QC) 지표로 쓰였지만 현재는 약효와 독성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추가 지표들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빛 이용해 약물 탈부착
일리아스바이오로직스는 엑소좀 안에 탑재시킨 약물을 생산 단계에선 엑소좀 내막에 고정시켰다가, 이를 필요할 때 떨어뜨릴 수 있는 ‘엑스플로어(EXPLOR)’ 기술을 갖고 있다. 엑소좀을 약물전달체로 개발하는 기업들은 엑소좀들이 저마다 특정 세포의 수용체에 선택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예컨대 간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고 싶다면 간세포에서 더 많이 나타나는 수용체에 반응하는 엑소좀을 약물전달체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엑소좀 안에 들어간 약물이 간세포 안에서 방출되지 않으면 약효를 기대하기 어렵다.
최 대표는 빛을 받으면 결합하는 단백질 모듈을 약물과 엑소좀을 결합하는 ‘스위치’로 만들었다. 광합성 과정에서 낮과 밤을 구별할 때 쓰이던 식물 유래 단백질을 이용해 세포 배양 단계에선 엑소좀 속에 약물을 고정시키고, 배양이 끝나면 약물이 엑소좀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빛을 쬐서 엑소좀 속에 약효를 내는 단백질을 부착한 뒤 빛을 없애 이 결합을 분리시키는 방식이다. 최 대표는 “엑소좀이라는 폭격기에 실은 폭탄인 약물을 떨어뜨리기 위해선 약물인 단백질이 엑소좀 속에서 유리된 상태로 있어야 한다”며 “2017년 한국, 지난 7월 미국서 엑스플로어 기술의 특허 등록을 마쳤다”고 말했다.
가장 개발 속도가 빠른 파이프라인은 항염증제로 개발 중인 ‘ILB-202’다. 최 대표는 “ILB-202는 패혈증과 신장합병증 동물모델에서도 치료 효과가 확인됐다”며 “내년 하반기 미국 호주 유럽 중 한 곳에서 임상 1상에 진입할 계획”이라고 했다. 미국 임상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여부에 따라 호주와 유럽 등에서 임상 1상을 추진한 뒤, 추후 2상을 미국에서 하겠다는 구상이다. 항암용 엑소좀도 개발하고 있다. 암세포를 직접 표적으로 삼는 방식 대신 암세포 주변 미세환경에서 작용해 면역 작용을 활성화하는 쪽으로 후보물질을 확보할 계획이다.
일리아스바이오로직스는 2022년 초 안에 성장성 특례로 코스닥 시장에 입성할 계획이다. 지난달 키움증권과 대신증권을 상장 공동 주관사로 선정했다. 다국적 제약사와 엑소좀 기반 치료제 플랫폼 기술을 바탕으로 공동 연구개발이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최 대표는 “이미 해외 제약사 몇 곳과 공동개발 등의 계약을 논의 중”며 “내년 상반기면 다국적 제약사 한두 곳과 기술이전 등의 계약이 성사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