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금 전까지 트위터에 띄운 글입니다.
“그들(조 바이든 진영)이 선거를 훔치려고 한다.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다.(They are trying to STEAL the Election. We will never let them do it.)”(트위터가 가림 처리)
“지난밤 난 확실하게 이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민주당이 휩쓸고 있다. 마술처럼 표가 사라지고 있다.(Last night I was leading often solidly, in many key States, in almost all instances Democrat run & controlled. Then, one by one, they started to magically disappear.)”(트위터가 가림 처리)
“왜 우편투표를 개표할 때마다 그들에게 몰표가 나오나.(How come every time they count Mail-In ballot dumps they are so devastating in their percentage?)
“이게 도대체 뭔가.(WHAT IS THIS ALL ABOUT?”(트위터가 가림 처리)
“그들은 모든 지역에서 바이든 표를 찾아내고 있다. 조국엔 매우 나쁜 일이다.(They are finding Biden votes all over the place. So bad for our Country!)”
“엄청나게 나쁜 일이 일어나고 있다.(What a terrible thing is happening!)”
반면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는 상대적으로 여유를 되찾은 것 같습니다. 오늘 띄운 트윗을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모든 표를 개표할 때까지 쉬지 않을 것이다.(We won't rest until everyone's vote is counted.)”
“모든 표가 개표될 수 있도록 최대 규모의 선거 보호 장치를 마련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트럼프가 아닌 미국인들이 선거 결과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To make sure every vote is counted, we’re setting up the largest election protection effort ever assembled. Because Donald Trump doesn’t get to decide the outcome of this election ? the American people do.)”
“전부 개표하라.(Count every vote.)”
“믿음을 가지라.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Keep the faith, guys. We’re gonna win this.)”
불과 몇 시간만에 트럼프와 바이든 간 분위기가 이렇게 반전된 것은 당초 예상대로 우편투표 때문입니다. 바이든이 크게 우세할 것으로 보이는 우편투표 개표 작업이 대부분 늦게 시작되면서 트럼프 우세 지역이 속속 바이든 우세로 넘어가고 있지요.
미국에서 선거일은 휴일이 아닙니다. 생업에 종사해야 하는 계층과, 선거 당일 긴 줄을 서기를 귀찮아하는 젊은층 등은 우편투표를 선호하지요. 이 중엔 바이든 지지자들이 많습니다.
미국에선 각 주(州)의 인구 비례로 배정된 선거인단이 대통령 당선을 결정하는데, 총 538명 중 딱 과반인 270명을 확보하면 이깁니다. 현재 바이든은 264명, 트럼프는 214명의 선거인단을 차지한 상태(AFP 기준)이죠.
피말리는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고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바이든에 좀 더 유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로 우편투표의 위력 때문이지요. 올해 역대 최대인 1억6000만 명이 투표에 나섰고, 이 중 1억 명 넘는 유권자가 우편투표와 같은 사전투표를 했습니다.
문제는 우편투표를 통해 뒤늦게 뒤집기에 성공한 바이든을 트럼프가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트럼프는 대선 캠페인 때부터 우편투표의 부정·오류 가능성을 끊임없이 제기했습니다. 위 트위터에서 나타나듯 “투표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게 기본 입장입니다.
재검표는 물론 줄소송으로 이어질 게 확실해 보입니다. 트럼프는 이미 핵심 경합주에서 개표 작업을 중단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우편투표 및 개표 과정에서 부정 행위가 있었고, 선거일 이후 도착한 우편투표 기표지는 무효라는 것이죠.
대선 결과와 관련, 최종 결정을 내리는 곳은 연방대법원입니다. 대법원의 구성은 보수 6명, 진보 3명으로, 보수 진영이 압도적입니다. 특히 대법관 중 3명을 트럼프가 직접 임명했지요. 만약 뒤집기에 성공한 바이든에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바이든과 수천만 명의 지지자들이 승복할 수 있을까요?
미국 대선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서로 승복하지 않은 채 “내가 대통령”이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이런 사례는 저개발국에선 드물지 않게 발생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베네수엘라입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은 2018년부터 자신이 대통령이라고 서로 주장해 왔습니다. 마두로가 불법·편법을 동원해 선거를 훔쳤고,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며 과이도는 자신만의 정부를 따로 차렸지요. 국회의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두 명입니다.
아프가니스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작년 9월 대선에서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과 압둘라 압둘라 전 최고행정관(일종의 총리)이 맞붙었는데 둘 다 승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부정 선거였다는 것이죠. 올 3월엔 두 사람이 각기 다른 곳에서 취임식을 열었습니다. 내전 위기로 치닫자 두 사람은 결국 내각 구성권을 반반씩 나누는 식으로 합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서로 화해하도록 적극적인 압력을 행사했다고 합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나 아프가니스탄처럼 장기적인 내홍을 겪을 가능성은 낮습니다만, 만에 하나 현실화한다면 과연 중재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