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전 세계 유통 기업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백화점 등 전통 유통기업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반면 아마존이 선두에 선 온라인 기업들은 미래 시장까지 장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승자는 또 있었다. ‘과거의 소비자’와 ‘미래의 소비자’를 이어주는 중고거래 업체들이다. 코로나19로 소득이 감소한 소비자들이 중고시장으로 몰려들면서 중고거래 플랫폼을 제공하는 기업들은 미국과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몸집을 불리고 있다.
중고거래 기업 전성시대중고시장 성장의 중심에는 모바일 앱을 통해 거래할 수 있게 서비스하는 기업들이 있다. 일본 기술주 시장인 마더스의 대장주 ‘메루카리’가 대표적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중고거래 앱 회사인 메루카리는 올 들어 주가가 114% 올랐다. 일본 중고거래 시장의 폭발적 성장이 메루카리 주가를 밀어올렸다. 메루카리는 올해 7월로 종료된 2019회계연도에 762억엔(약 827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2018년보다 47.6% 늘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에 따르면 메루카리는 2016년 이후 모든 분기마다 매출이 전년 대비 증가하고 있다. 아심 후세인 KB증권 연구원은 “메루카리는 자산규모가 작고 투자금액도 크지 않지만 플랫폼 지배력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일본시장에서 보기 드문 기업”이라며 “코로나19 시대 투자 트렌드에 맞는 매력적인 사업모델을 가졌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중고차 자판기’ 사업모델로 유명한 중고차 중개기업 카바나가 중고차 시장 성장에 힘입어 급성장하고 있다. 카바나 주가는 올해에만 97% 올랐다. 지난 9월 KOTRA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차량부품 등을 포함한 미국 중고차시장의 규모는 올해 991억달러(약 113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카바나를 이용하면 매장이나 중개인 없이 온라인에서 중고차 매매가 가능하고, 자판기를 통해 차량을 자유롭게 수령할 수 있다. 카바나의 지난 2분기에 자동차 판매량이 작년보다 25% 늘어나 5만5098대를 기록했다.
중고거래 플랫폼 선호 현상은 한국 자본시장에서도 진행 중이다. 유진자산운용은 지난해 3조5000억원의 거래액을 기록한 국내 최대 중고거래 플랫폼인 중고나라를 인수하기 위해 중고나라 최대주주 이승우 대표와 협상을 하고 있다. 유진자산운용은 중고나라 지분 약 60%를 인수하는 데 1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거래액 기준 국내 2, 3위 거래업체인 번개장터와 당근마켓도 벤처캐피털(VC)의 잇단 러브콜을 받고 있다. 당근마켓은 지난해 3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4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번개장터는 지난 1월 프랙시스캐피탈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약 1500억원의 기업가치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았다. 중고 거부감 없는 MZ세대 영향도세계적으로 중고거래 시장이 팽창한 데는 코로나19로 인한 소득 감소, 인터넷을 활용한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 등이 큰 역할을 했다. 이들 플랫폼은 사용자와 사용자를 연결해주고, 직접 물건의 상태를 확인 및 보증하고, 거래 확정 및 대금 지불을 중계하는 ‘에스크로’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이는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로 이어져 중고거래에 참여하지 않았던 새로운 소비자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였다. 오린아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로 소비자들이 매장 방문을 꺼리지만 구매자와 판매자를 연결해주는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면서 전 세계 중고시장이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요 소비주체로 부상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도 중고거래 시장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MZ세대는 중고물품 거래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 고가의 명품을 중고로 구매하는 등 중고시장의 ‘큰손’으로 주목받고 있다. 영국 소비자리서치업체인 민텔이 지난 7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MZ세대 소비자의 52%는 지난 1년 이내에 중고거래 앱을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국내에서도 MZ세대는 번개장터 전체 가입자의 84%, 올 상반기 거래액의 51%를 차지했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