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하고 부드러운 모습.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등 TV에서 오랜 시간 보아온 배우 박상원의 이미지는 그랬다. 오는 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리는 1인극 ‘콘트라바쓰’를 준비하는 그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에 안경까지 썼다. 쓸쓸함과 고독함이 물씬 배어 나온다. 막바지 공연 준비 중에 만난 박상원(사진)은 “TV에선 햄릿을 박상원화하게 된다면, 무대에선 나를 버리고 햄릿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박상원의 기존 이미지를 버리는 게 이번 공연의 첫 단추라 생각했다”며 “사람들이 내가 옆에 있어도 잘 몰라보는 걸로 봐선, 첫 단추는 일단 성공한 것 같다”며 웃었다.
박상원은 1979년 연극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데뷔했다. 1인극은 데뷔 41년 만에 처음이다. 연극 무대는 2014년 ‘고곤의 선물’ 이후 6년 만. 1인극에 서는 소감을 묻자 돌아온 박상원의 첫마디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였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관객인데, 오랜만에 관객들을 만날 시간이 다가오니 감사하면서도 초조하다”고 했다.
서울예술대 공연학부 연기전공 교수를 맡고 있는 그는 학생들에게도 관객의 중요성을 늘 강조한다. “관객은 나를 도와주는 천사일 수 있지만, 나를 망가뜨리는 악마일 수도 있죠. 이런 양면성을 잘 타고 넘으며 전폭적인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고 자주 얘기합니다.”
그는 방송을 하면서도 무대에 꾸준히 올랐다. 뮤지컬 ‘브로드웨이42번가’, 연극 ‘레인맨’ 등을 선보였다. “방송은 영상으로 영원히 남긴 하지만 연기 자체만으로 봤을 땐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측면이 있어요. 반면 공연은 근육이 만들어질 정도로 반복해서 해야 하죠. 그래서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를 견뎌내고 관객 앞에 서는 것 자체가 정말 매력적이에요.”
이번에 공연할 ‘콘트라바쓰’는 ‘향수’ 등으로 잘 알려진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희곡이 원작이다. 그는 오케스트라 안에서도 비중이 다소 적은 더블베이스 연주자를 연기한다. 거대한 오케스트라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악기와 그 연주자의 삶을 통해 인간 소외 등을 표현한다.
“예전에 사진전을 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대사에 녹였어요. 그 과정이 담긴 제작 일지도 꼼꼼히 기록해서 책으로 낼 예정이에요.”
박상원은 이 작품을 3년 동안 준비하며 더블베이스와 무용도 배웠다. “악기 보잉(활질)을 하면서 음 하나하나를 표현하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극에서 연주해야 할 것들을 빨리 해내고 싶은데 선생님은 오히려 기본을 반복해 가르쳐 주셨어요. 그러다 기본 속에 모든 테크닉이 다 담겨 있다는 걸 깨닫게 됐죠.” 작품엔 패션디자이너 이상봉, 무대 디자이너 정승호, 연출가 황준형 등 유명 창작진도 참여한다. “모두 함께 이 작품의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현실화하는 데 힘을 모으고 있어요. 협소한 섬 같은 무대를 만들어 소외된 인간의 고독을 잘 담아낼 겁니다.” 공연은 오는 29일까지.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