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오랩, VR 콘텐츠용 사운드로 세계1위 돌비에 도전장

입력 2020-11-03 16:31
수정 2020-11-04 01:24

세계 음향기술 시장은 미국 기업 돌비가 장악한 형국이다. 대다수의 영화·음악 콘텐츠 사업자가 돌비의 음향기술을 표준으로 쓰고 있다. 가우디오랩은 가상현실(VR) 콘텐츠 등에 필요한 3차원(3D) 음향기술로 돌비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민 국내 스타트업이다. 국내에 얼마 남지 않은 음향공학 박사들을 끌어모아 ‘극강의 소리 경험’ 완성에 매진하고 있다.

오현오 가우디오랩 대표(사진)는 “VR 콘텐츠 시장이 열리면서 30년 만에 돌비에 맞설 수 있는 사업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VR 콘텐츠에 필요한 음향기술은 TV·스마트폰 등 2차원(2D) 스크린에 쓰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사용자의 가상 위치 변화에 따라 소리나는 곳이 달라져야 한다. 기술적 구현이 쉽지 않아 이 시장엔 ‘1등’이 없었다.

LG전자 출신인 오 대표는 2015년부터 ‘음향공학 기술자’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음향연구실이 있던 유일한 대학인 서울대와 연세대 출신 박사 6명을 영입했다. 같은 해 가우디오랩을 창업하고 이듬해 미국 할리우드로 떠났다. 콘텐츠 사업자에게 기술을 공급해 이익을 얻는 돌비처럼 VR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에 기술을 팔기 위해서였다. 사업은 순항하는 듯했다. 오 대표는 “한 달 만에 디즈니와 회의를 잡고, 아마존과도 사업 논의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나 2017년 여름 분위기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VR 기기 수요 증가 속도가 예상을 밑돌아서다. 열성을 보이던 할리우드의 콘텐츠 사업자들도 VR 콘텐츠에 대규모로 투자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태도를 바꿨다. 오 대표는 “사업 모델을 바꾸지 않으면 회사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듬해 국내로 돌아온 오 대표는 VR 기술 개발과 동시에 사업 내실을 다지기 시작했다. 급격하게 커지고 있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에 주목했다. OTT에선 여러 영상 간 음량의 차이를 보정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한 콘텐츠에선 소리가 작게 들려 음량을 키웠는데, 다른 콘텐츠로 넘어갔을 때 소리가 크게 들리면 사용자는 큰 불편을 느끼기 때문이다. VR 콘텐츠에 필요한 첨단 오디오 기술을 개발했던 가우디오랩으로선 어렵지 않은 기술이지만, 원하는 기업이 수두룩했다.

가우디오랩은 네이버TV, SK텔레콤의 플로, NHN의 벅스 등에 이 기술을 공급했다. 비슷한 수요가 있던 음원 스트리밍 업체들도 가우디오랩을 찾았다. 스마트폰 제조사에도 음향기술을 팔고 있다. LG전자는 올해 전략 스마트폰인 LG벨벳과 LG윙에 가우디오랩의 음향기술 ‘스페이셜 업믹스’를 탑재했다. 음악을 듣는 사용자가 마치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은 공간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최근 베트남의 스마트폰 제조사 빈스마트도 자사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아리스’에 이 기술을 적용했다.

가우디오랩은 VR 관련 기술 개발을 꾸준히 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인공지능(AI) 기반 음향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오 대표는 “VR 콘텐츠 시장은 반드시 커질 것”이라며 “최상의 음향기술을 개발해 미래 시장을 선점하겠다”고 말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