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400종 사라졌다…소비자 혜택도 '싹둑'

입력 2020-11-02 17:07
수정 2020-11-03 01:06
최근 2년 새 400종에 달하는 신용·체크카드가 사라진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가맹점 수수료를 큰 폭으로 내린 영향이 크다. 카드 결제로는 수익이 나지 않다보니 혜택이 많은 기존 카드를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과당경쟁을 막겠다는 이유로 정부가 ‘이익을 내지 못하는 카드는 없애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것도 ‘알짜 카드’를 사라지게 만든 요인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시장 개입으로 금융소비자의 혜택이 줄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혜택 많은 카드 줄줄이 물갈이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와 올해 단종된 신용·체크카드는 각각 202개, 182개로 조사됐다. 2017년(93개)과 2018년(100개)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난 수치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가맹점 수수료 인하에 수익성 분석 가이드라인까지 도입되면서 카드사들이 기존 카드를 대거 물갈이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수익성 분석 가이드라인은 지난 1월 정부가 과당경쟁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막겠다며 도입한 자율규제다. ‘3년간 순익을 내지 못하는 카드는 출시하지 말라’는 것이 요지다. 카드 판매에서 나온 수익은 가맹점 수수료가 대부분이다. 비용에는 마케팅이나 인건비 등이 포함된다. 수수료가 원가 이하로 낮아진 상황에서는 소비자들의 혜택을 줄이는 방법 외엔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셈이다. 혜택 3분의 1토막 나기도수익성 분석 가이드라인이 도입되자 금융소비자에게 돌아가던 혜택이 대폭 줄었다. 지난해부터 단종된 카드를 보면 새롭게 출시된 카드의 혜택과 차이가 크다. 최근 단종된 롯데카드의 텔로SKT와 페이코X롯데카드, 벡스카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2월 단종된 텔로SKT는 카드 결제액 30만원을 채우면 SK텔레콤 통신비 1만6000원을 깎아준다. 올 들어 출시되는 카드의 통신비 할인폭은 5000~6000원 수준에 불과하다. 1년 만에 혜택이 3분의 1토막 난 셈이다. 지난 8일부터 발급이 중단된 페이코X롯데카드는 페이코 가맹점에서 결제하면 5%를 적립해준다. 월 최대 30만 포인트까지 적립이 가능해 많은 인기를 끌었다. 지난 8월 단종된 이마트KB국민카드(이마트에서 결제 시 최대 10% 할인), NH농협카드의 올바른포인트카드(적립한도 없이 0.7~1.5% 적립) 등도 사라진 인기 카드다. A카드사 관계자는 “남아 있는 카드 유효기간만큼 10만원에서 20만원대까지 상품권을 주면서 해지를 권유하고 있다”고 했다.

카드업계에도 수익성 가이드라인은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카드사들은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이후 ‘자율규제’라는 명목 아래 여러 가지 통제장치를 마련했다. 카드를 출시할 때마다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직접 서명하도록 명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새로 내놓은 카드에서 손실이 나면 CFO가 책임지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비용이 수익을 웃돌아서 손실이 나면 사장이 직접 이사회에 원인 분석 결과와 카드 단종 여부를 보고해야 하는 의무규정도 가이드라인에 신설됐다.

B카드사 관계자는 “동네마트에서도 특정 상품을 판촉하기 위해 손실을 보면서도 장사를 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카드 상품 하나하나까지 손실이 난다고 사장이 이사회에 보고하도록 정부가 강제한 것은 지나친 개입”이라고 지적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